김원락 목사의 ‘목회칼럼’ | 함께 가는 천국 |

순종하는 총명이 우리에게

들을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아무나 들려지거나 듣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듣는 지혜가 있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시(sight), 청(hearing), 후(smell), 미(taste), 촉(touch)의 5가지 감각(Five Senses)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가장 기본적인 감각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감각이 청각이라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감각이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도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듣기는 들어도 잘 듣는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루 생활의 45%를 듣기에 소비하고 30%는 말하기에 소비한답니다. 듣는다는 것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소비할 것 같은 말 하는 것과 비교를 해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1분에 약 180개의 단어를 말하고, 300-400개의 단어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듣는 것은 본능적인 능력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귀를 기울여 잘 듣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교회에 다니면서 무엇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습니까? 서로 만나서 말하는 것이라고 하고 싶겠지만, 듣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듣는 것은 믿음의 기초가 되지만 믿음의 결정이기도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교회에서는 잘 듣는 것으로부터 신앙생활이 시작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도 어렸을 때부터 회당에 가서 랍비의 말을 경청하고 함께 대화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경청의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하신 예수님의 외치심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귀 있는 자는 들을 줄 아는 자를 말합니다.
욥기 34장16 “만일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곧, 들을 줄 아는 것이 총명이라 하신 말씀입니다.
귀가 있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순종”이란 단어를 잘 알 것입니다. 본래 “순종하다”라는 말은 영어로 “obedient. 오비디엔트”입니다. 이 말은 “듣는다”는 뜻의 라틴어 단어 “audire. 아우디레”에서 나왔습니다. 곧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순종이 가능하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귀를 기울이다”라는 뜻의 “옵 아우디레. ob audire”에서 나왔습니다. 귀를 기울여야 순종하고 순종하는 것이 총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순종하는 총명이 역사의 끝자락을 살아내는 성도에게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가면, 목사님들로부터 설교를 듣게 됩니다. 설교를 듣는 데는 내용과 전달(delivery)이 있습니다. 여기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배달)하는 사람입니다. 배달꾼이라는 것입니다.
배달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배달사고를 내지 않는 데 있을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중간에서 떼먹지 말고 보태지도 말라”는 말입니다.
때로는 설교자가 해야 할 말도 하지 않을 때가 있고, 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뜻을 표명하는 시간이 아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이 배달꾼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놓쳐버린 처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듣는 자는 듣는다고 다 들은 것이 아니라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배달꾼에게 두 번째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주인이 주시는 말씀을 잘 들어야만 할 것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달하는 것입니다. 배달꾼의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말을 잘 하는 시간이 아니라, 말을 잘 듣는 시간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배달꾼인 설교자가 먼저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만 합니다. 그랬을 때 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뜻하심을 옳고 바르게, 배달하게 됩니다.
욥34:34 “총명한 자와 내 말을 듣는 모든 지혜 있는 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총명한 자는 말씀을 잘 듣는 자를 말합니다. 처음에는 듣기가 힘듭니다. 가장 힘든 것이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듣기만 해도 지혜로운 사람이요, 총명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하는 것입니다.
삼상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더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귀를 주셨는지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마도 인생에게 두 귀를 주신 것은 양쪽의 말을 공평하게 다 듣고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의 뜻을 함께 분별하며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곧 세상을 통하여 세상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하기에 눈과 달리 귀에는 꺼풀이 없습니다. 늘 열려 있다는 점입니다. 늘 듣고 시시때때로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 순종하는 총명의 삶을 살아 내라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행16:14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하여 말씀을 전할 때 귀를 열어 잘 들었기에 복음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보여지게 되었고, 경건한 사람이 되어 빌립보교회를 설립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는 귀를 기울이는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듣는 것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내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듣는 것이 보는 것을 결정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이 땅에 태동하게 되는 사도행전 2장과 4장에 대 역사하심이 나타날 때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이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선포합니다. 이때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다.
교인이 보이고 교회의 참된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높은 뜻을 이 땅에서 이루어 드리는 빛과 소금으로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순종하는 총명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

“만일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욥기34장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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