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묻고 또 묻자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세월 살아오시면서, 나름 인생의 위기가 무엇이던가요? 이제, 한 걸음 더 나가 삶의 여유를 가지면서도, 또한 긴박한 심령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만난 자들로서, 함께 생각했으면 하는 주제를 띄어 놓고, 도전을 드리고자 합니다. 역사의 끝자락에서 인생의 최대 위기라 하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인간의 지성과 능력이 극대화되면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산다는 데 있다 할 것입니다. 마치 자신이 다 아는 것처럼 빨리 결정해 버리고, 성급하게 자신과 남의 인생을 판단해 버립니다. 그러니, 자기가 하나님이 되고, 자기가 중심이 되어, 해결자로 자처하면서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 산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인생이 하나님께 질문을 하며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의지의 표현인 것입니다. 기도는 신뢰의 표현입니다.
신뢰하지 않고는 질문하지 못합니다. 신뢰하지 않고는 간구하지 못합니다. 주지도 못할 존재에게 어떻게 달라고 하겠습니까? 우리의 부족과 어리석음과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 질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예지를 믿고, 하나님을 해결자로, 해답자로 인정하는 것이 질문인 것입니다.
성경의 다윗은 잘 ‘묻고 물어서’ 지혜로운 자였습니다.
하나님께 질문이 많아 사랑받고 있으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아, 온-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왕이 되자마자 블레셋의 침입을 받게 됩니다. 이 긴박한 위기의 때, 다윗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묻게‘ 됩니다. 대상14:10상반절.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주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14절, 다윗은 하나님께 다시 묻습니다.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 삼하2:1상반절에서도 다윗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렇게 매사에 하나님 백성에 관한 일을 다윗은 왕임에도 불구하고, “묻고 또 묻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다윗은 “묻고 물어서”, 전쟁의 승리자가 되었으며, 성군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창세기 1장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주인이십니다. 그럼에도 죄악 덩어리인 우리 인생이 묻고 또 물어도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어떤 질문이든지 성심껏 대답해 주시는 신실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이미 다윗이 왕이 되어 첫 정사를 시작하게 될 때부터 전능하신 하나님께 “묻고 또 물어” 순종하고 있습니다.
대상 10상반절의 다윗의 물음에 ‘하나님 응답’하셨습니다. 10하반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가 저희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합니다. 또한 14절에 ‘하나님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마주 올라가지 말고 저희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저희를 엄습(기습)하되”라고 합니다. 삼하2:1하반절에 ‘하나님 응답‘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이렇게 인생이 ‘묻고’ 산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물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겸손이 관건입니다. 인생은 겸손하면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내가 모르는 나 자신을 하나님은 더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른 새벽 물어보십시오. 그것도 상세히 물어보십시오. 하나님은 너무너무 우리의 기도와 간구로 성경을 근거로 펴 놓고 ‘묻고 또 묻는’ 것을 좋아하시며, 우리의 질문에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신다 하셨습니다.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대상10:13-14) 사울왕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질문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일은 이미 기록된 말씀을 따라 그 명대로, 그 뜻하심대로 순종하며 사는 삶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울왕은 자신의 통치기간 동안 하나님께 묻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인의 의중을 묻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했습니다. 똑똑한 것 같지만 어리석은 짓입니다.
다윗 왕과 사울 왕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아주 간단한 데서 하나님께 갈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 앞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묻고 또 묻는 자였습니다. 반면에 사울 왕은 하나님 앞에서 선민을 맡아 통치함에도 묻지 않는 자였습니다. 이 차이가 삶과 죽음의 차이가 된 것입니다. ‘물어봐’는 삶입니다. ‘묻지마’는 죽음입니다.
왜! 하나님은 인생에게 물어보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은 인생에게 해답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물어봐도 괜찮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와 간구로, 또한 약속이신 성경을 펴놓고 더 깊이 깨달아 알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를 원하여, 물어볼수록 좋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죄에 죄를 더하도다”(사30:1) 공동번역 본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식들아! 너희가 나에게 물어보지도 아니하고, 일을 꾸미며, 내 뜻을 알아보지도 아니하고, 동맹을 맺어, 죄 위에 죄를 더하는구나!’” 이렇게 성도는 하나님께 묻는 자들입니다. 묻지 않고 행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라 하십니다. 이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신앙이 성숙된 자는 하나님께 물어보며 삽니다. 그러나 말세가 되면 요16:23에 예수님 경고하심처럼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 판단대로 결정하고, 하나님께 묻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도는 성경을 펴놓고 베레아 성도들처럼 물어보는 습관을 가져야만 합니다. 물어 봄이 곧 답이기 때문입니다.
물어보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다 되시어 2019년 이 한 해를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며 함께 살아 냈으면 합니다.

“저희(제자)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요한복음 6장 28-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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