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자, 그리스도인!

어느 목사가 산을 오르다가 미끄러져 낭떠러지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떨어지다가 간신히 소나무 가지 하나를 잡았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위를 보고 소리쳤습니다. 『”위에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 위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들아, 내가 여기 있다!” “누구세요?” “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 살려 주시면 충성을 다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네가 잡고 있는 나뭇가지를 놓아라.” “가지를 놓으라구요? 이 가지를 놓으면 저는 떨어져 죽습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믿음을 가져라.” 그 목사가 한참 생각하더니 다시 소리를 지릅니다. “거기 다른 분 누구 안 계세요?”』

이와 같은 위기 상황을 만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왜 신뢰하지 못하고 “거기 다른 분 누구 안 계세요” 했을까요?
여기서 우리의 과제가 무엇입니까? 신앙과 삶(실천)이 따로따로 가고 있다는 점의 문제 아닙니까? 성경을 펴 놓고 믿는 다는 사람은 많은데, 성경이 삶이 되는 믿는 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적다는데 문제(괴리)가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이 남에게 닥쳤을 때는 쉽게 남에게는 믿으라고 권면이 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사례가 아닌, 나의 결단으로 요청받게 되면 정작 자신은 믿지 못합니다. 쉽지 않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역사의 끝자락을 살아내는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은 세상 지식이 팽창하여 많이 알고 또한 다 안다고 자신만만한 사람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러기에, 내가 잡고 있는 것, 나뭇가지를 놓으라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도 믿지 못합니다. 신앙 따로, 실천 따로 과연 누구를 믿고 무엇을 안다는 것인지 도무지 신앙을 찾아볼 수 없는 곧 입술의 고백은 있는데 삶이 따르지 않는 현실을 피차 보고 사실 것입니다. 창1: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창조의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우리 인생에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한가지 만은 분명히 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더 나아가 아모스 선지자는 암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이쯤에서 확실히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졌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내가 의지하는 나뭇가지를 놓으라 하십니다. 성경을 펴놓고 하나님을 만났으면 딤후3:14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이는 “배우는 대로 행하라. 확신하는 대로 행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함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건강식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좋다는 것은 뭐든 다 먹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착 건강에 중요한 규칙적인 운동은 하지 않고 먹어서 건강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얼마나 신앙이 큽니까? 성경공부, 기도, 사역 등등…… 우리 만큼 많이 하고 열심 있는 나라가 없을 것입니다. 어느 교회를 가도 하나님 말씀을 많이 먹습니다. 문제는 하나님 말씀은 듣고(먹고) 믿어 뜻을 삶으로 옮겨 내는 것이 복 있는 자라고 신28:1-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라” 내가 잡고 있는 나뭇가지 이제는 놓으셔야지요. 내가 잡고 있는 것 놓아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결국 영원한 승리를 가져온 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2019년을 함께 도전하고자 합니다.

성경 사무엘상 2-5장에 기록된 사무엘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역사를 경륜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린 사무엘을 엘리라는 부패한 제사장과 그의 사악한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지도 아래 두셨습니다. 그 아들들도 제사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매우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고 속임수를 써서 하나님의 헌물을 착복했고 회막문 어귀에서 일하는 여인과 성전 안에서 동침까지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거기에 엘리 제사장은 얼마나 말씀과 기도로 영적 훈련을 게을리 했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성전에 나와 기도 중인 한나라는 여인을 가리켜 술에 취했다고 공박을 했습니다. 이는 육체적으로만 비둔해진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하나님께 민감하지 못한 타락으로, 자신의 아들들에게 죄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뿐더러 하나님의 제사를 맡은 자로써 나태했으며 성전 불을 꺼뜨려 버린 제단이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무엘을 그곳에 두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스스로 실족하여 다른 교회를 찾아다닙니다. 그들은 한 결같이 자신들이 섬기던 목회자나, 리더들의 부도덕한 생활 방식이나, 자신과의 관계에 괴리감으로 인해 그 교회를 떠났다고들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삼상3:1을 묵상하여 보았으면 합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이렇게 영적인 부패가 가동이 되면 결국 대가를 치르게 돼 있습니다. 그 당시 여호와께서는 엘리에게 말씀도 자주 해 주시지 않았고 계시를 보여 주시는 일도 드물었다는 점입니다. 엘리와 그 아들들의 부패 때문에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 전체를 멀리하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등불이 주의 전에서 막 꺼져 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사무엘이 여호와를 경배할 다른 장소를 찾아다녔을까? 그가 엘리와 그 아들들의 사악을 고발하려고 장로들을 찾아갔을까? 그가 엘리와 그 아들들을 그 제사장의 직에서 끌어내려고 위원회를 결성했을까? 아닙니다. 사무엘은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으며 그저 여호와를 섬겼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그곳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엘리나 그 아들들의 행동에 불만을 토하며 책임을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라고 사무엘을 그곳에 두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섬기라고 그곳에 두셨으며, 사무엘은 엘리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을 능히 다루실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아버지에게 훈계할 수 없습니다. 자식을 가르치고 바르게 훈계하는 것은 아버지의 의무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제사장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를 판단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의 잘 못을 지적해 줘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를 마음에 굳게 새겼더라면 오늘날의 이 땅의 교회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잠언 26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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