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의 사랑 ⑴

2018년을 마감해야 하는 역사의 현실을 맛 닫음 하면서, 세 번 베드로의 부인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과 그러나의 사랑으로 도전을 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예언하십니다. 눅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예수께서 붙잡히신 후, 제자들이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난 사실을 가리킨다. 막14:50), 너희를 청구하였으나(욥1장)“ 베드로는 귀담아 듣지 않고, 자신의 충동적이며 자랑하는 마음과, 사랑의 마음과, 충성심과 남다른 통찰력을 앞세우며, 얼마나 자신만만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자라고 자만합니다.
이런 현상은 기도를 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결과인 것입니다. 아주 심각한 예언을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는데, 귀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말씀 앞에 겸손해야만 합니다. 자신은 마음이 순수하다고 생각되고, 또한 정직하고, 자신은 절대 그런 마음이 없으니까?
그럴 리가 없다고 자만하다 보니,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세 번씩에나 잠자는 베드로를 깨워 주었지만, 베드로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
자신은 절대 예수님의 말씀 하신 것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은 예수님을 배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다가오는 예수님의 십자가도 몰랐지만, 자신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의지의 결단만으로 충성과 진심을 맹약(서약)합니다.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눅22:33), 마26:33“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요13:37“주여! 내가…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베드로는 이날 밤 세 번이나 주님을 저주하고 부인하게 됩니다.

베드로의 저주와 부인은 이전에 있었던 가룟 유다의 배신과 비교됩니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눅22:21-22)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은 30에 팔고, 나중에 자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여 죽습니다. 베드로 역시 유다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세 번씩이나 부인하였는데, 그 부인하는 정도가 매우 심합니다. 자신이 예수와 한 패인 것을 심하게 저주하며 부인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베드로의 부인으로 베드로의 운명이 결정되지 않고 돌이키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2)
그런 당부의 말씀을 주시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실제로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그러나의 사랑”으로 베드로를 다시 사도로 회복시키십니다.

이 둘(유다와 베드로)은 이렇게 차이가 나는가? 우리에게는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다와 베드로는, 누구는 유다가 되고, 누구는 베드로가 되는가는 성경에 사실 설명이 없습니다. 단지 이런 말만 있을 뿐입니다.
“너희는 용서받은 유다(죄인이)다“. 이렇게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유다가 따로 있고, 베드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전부 유다라는 지적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떤 유다들은 제갈 길로 갔고, 어떤 유다들은 용서를 받아서 베드로가 되었다고,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교회(성도)들이 되었다는 것은, 용서받은 죄인인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이해인 것입니다.

롬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니 우리가 받은 용서는 잘할 수 있었는데, 실패한 자를 용서하여 기회가 다시 한 번 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용서로서, 유다를 베드로로 바꾸어 놓는 용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대속의 제사로 내어 주셔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우리 죄인들을 의인들로 만들어 주시며, 자신의 자녀들로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이 예수님의 용서인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복음을 믿으면 의인이 되고(롬1:16-17), 새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 되며(고후5:17), 정죄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곧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6-17).
이제 “내 인생은 내가 주인“으로 생각했던 자리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부름을 받고, 보냄을 받는 순종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이처럼, “그러나의 사랑”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2)
롬8:26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 약속의 말씀이 이제부터 너는 유다가 아니고, 베드로다라고 죄 용서를 선언하심인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는 말씀의 성취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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