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만난 자

오늘 새벽엔 차가운 바람에 혼까지 세척될 것 같은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려 생명의 싱그러움을 만끽해 본다. 생명! 성경에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고 했는데 그 말씀은 내 속에 하나님께서 이른 말씀이 있어야 생명이 있다는 말씀이리라. 정말 나에게는 그 이른 말씀이 있는가?

새로 태어나는 아기를 보며 그 아기에게 물었다. 생명의 신비함을 아는지를…… 엄마 뱃속을 빠져나오기 위한 그 죽음 같은 고통을 통해 열리는 생명의 세계를 맞이하는 아기는 아니 엄마는 그 생명의 신비함을 알까. 아니 하루하루 스물네 시간이 같은 날이 없이 흘러가는 가운데 수많은 생로병사를 겪으며 매일 죽는 연습을 하며 사는 우리네 인생들은 그 생명의 신비함을 알까.

그렇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내가 찾고 찾아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영이고 생명이신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실 때 그를 영접하고 믿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리라. 그리고 우리의 아픔과 슬픔 모든 것들을 주님의 십자가에 이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흘러 들어오는 것이리라. 그러므로 오늘도 내 기도는 자꾸 뭘 더 달라고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내 것을 더 포기해서 주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려본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 뭘까. 자신의 분야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녹슬지 않는 반짝임이 보인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영혼을 지키고 살리는 것이리라. 삶을 더 정성스럽게 살아야겠구나. 삶을 더 아름답게 가꾸며 살아야겠구나. 삶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주고 가야겠구나 하는 다짐들이 꿈틀거리며 올라온다. 그렇다. 생명은 모든 것을 하나로 관통하는 힘이 있다. 그렇게 생명을 향해 내 삶을 공경하며 조금씩 작품을 만들어 가다 보면 내가 감히 기대하지 않는 삶을 만나리라.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마워하는 좋은 이웃이 되어 가지 않을까.

그렇게 생명을 만난 자들에게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나의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이 계시고 제자들이 있고 일거리들이 따라오며 사랑이 있고 용서가 되어지며 치유가 일어나는 일들이 줄줄이 따라오리라.

그렇다. 세상에 사는 모든 생명체는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진력한다. 풀과 나무들도 무표정하게 태연해도 그들은 땅에 귀를 기울이면서 혹독한 겨울을 참아내고 인내하여 새봄의 싹을 소중하게 키워내고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빛을 몸으로 막아내며 타 죽지 않고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한다. 생명을 만난 자는 이제 그 생명을 보존해야 한다. 아니 더 싱그럽고 탱탱한 생명으로 키워 나가야 한다. 향유가 담긴 옥합은 깨져야 온 방안이 향유로 가득하듯, 내 자아가 깨지고 깨져서 예수 향기로 진동할 때 생명은 내 안에서 진짜 생명으로 힘을 발휘하게 되리라.

일거리가 수북이 쌓여있는 날에도 머리로 생각할 뿐 가만히 보고만 있을 때가 있다.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비상을 하고 싶을 때이다. 몸에 덕지덕지 쌓인 때와 먼지 때문에 마음의 진심이 퇴색되지 않았는지 돌아보고 싶은 때이다. 그래서 물건을 정리해보고 나무도 보고 하늘도 보며 기도의 시간을 조금만 더 늘려보고 진한 커피를 천천히 마셔도 보면서 삶을 조금 더 단순하고 소박하게 만들어 본다. 생명의 싱그러움을 내 안에서 다시 만끽하도록….

이 깊은 가을의 길목에서 제 색깔로 물드는 나무들을 보며 우리도 이 아름다운 계절의 싱그러운 생명을 이어받아 각기 제 색깔로 철이 들어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바램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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