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너머의 삶

씨에틀에 강의차 다녀왔다. 비행기에 올라 돌아오면서 창밖의 끝없이 펼쳐지는 하얀 구름을 보니 괜스레 울컥 눈물이 쏟아진다.
그렇구나. ‘내 생각 너머의 삶’은 끝이 없는 거구나. 행복의 눈물이리라. 세월이 힘들고 사람들의 맘이 강박해져도 이렇게 진솔하게 가슴의 말을 나눌 사람들이 있다는 것. 아직도 말씀을 들고 쫓아다닐 곳이 있다는 것. 많이 지치고 힘든 사역 가운데서도 해 같이 빛나는 사모님들의 얼굴들을 뵈니 오히려 내 속에 힘이 다시 불끈 주어진다.
그렇다. 누구나 살면서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고…… 다 놔버리고 생을 마감하고 싶을 때도 있다고……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그러나 주저앉아서 못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눈물을 훔치면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고 일어나서 주님이 주신 사명 부여잡고 달려가자고…… 사모님들을 위로했다.
사실은 내가 위로를 받고 왔는데 말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게 되는데…… 그리고 그때 보는 것은 전과 같이 않을 텐데……
삶은 그런 것 같다. 일단 내가 발을 내 디뎌야만 알아지는 비밀이 있다. 홍해가 갈라진 것은 모세가 기도할 때도, 지팡이를 내려쳤을 때도 아니라, 홍해는 모세가 발을 내디뎠을 때 비로소 갈라졌다. 또한 여호수아에게 ‘네가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너에게 주겠다’고 하신 약속도 먼저 발바닥으로 밟을 때 알아지는 비밀이리라. 그런 걸 우린 용기요, 결단이요, 담대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결론은 ‘믿음’이리라.
그렇다. 그렇게 그런 일들이 반복될수록 거기에 지혜의 가속도가 붙고 어쩜 사는 것이 더 쉬워지고 매달리지 않아도 저절로 풀리는 일들도 있어지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 세미나에 참석하는 중에 이런 연습을 해 보았다. 한 발자국 더 느리게 사는 연습, 조금만 더 천천히 씹어 먹으며 밥과 반찬을 음미해 보고 조금만 더 유유자적한 걸음걸이로 땅, 나무와 건물, 그런 것들과 인사해 보고, 가끔은 게으르게 사는 자신을 용서해 주면서 조금만 더 천천히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드리며 그분의 음성에도 귀를 기울이는 연습……
늘 바쁘고 조급하게 사는 나의 모습은 바로 지혜 없음에서, 욕심에서, 게으름에서 오는 산물임을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삶의 황혼 길에 접어들면서도 아직도 서툰 나의 삶의 현주소임을 깊이 깨닫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때로는 책을 잘못 고르듯이, 의사가 오진을 하듯이 상대의 마음도 또 나 자신의 마음도 잘못 진단하여 맘을 상하게 할 때도 또 상처를 줄 때도 있지만, 그게 우리의 본심이 아니었음을, 우리 속에 깊숙이 자리한 진짜 마음이 따로 있음을 알아주는 것, 그렇게 이해해 주고 아껴주고 조금씩 도와주고 그리고 그게 고마워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사는 것……

친구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를 주고받으면서도, 가장 가까운 가족끼린 이야기조차 막혀 행복의 감각을 잃어버린 외로운 우리네들, 인생을 살면서 모든 것을 불사르게 내어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그게 가슴으로 조금 더 깨달아지면 정말 좋겠다.

우리가 살다가 때론 비가 되어도 혹 눈이 되어도, 여전히 나는 ‘물’임을 아는 지식을 놓지 않고, 그 물이 고여 있어 썩지 않고 그 물줄기가 펑펑 흘러 나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말씀 속에서 잘못을 찾아내어 계속적인 정화가 일어나고 치유가 일어나는 그런 파장이 파도처럼 일어나면 좋겠다.

익숙한 일상을 떠나 생면강산에 다녀오면 그만큼 인생이 커지고 성숙해져야 하리라.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동안 너무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던 많은 일상들이 참으로 귀하고 고맙고 좋은 것들인 것이 새롭게 깨달아지는 것, 그것이 여행의 열매가 아닐까. 그래서 내 시야가 너무 좁아 그 잣대로만 판단하고 생각했던 그 생각들 너머의 무한한 생각과 세계가 있다는 것, 이번 여행을 통해 ‘내 생각 너머의 삶’을 향해 올라가 보는 기쁨과 함께 그동안 익숙해져서 마구 대하던 내 일상에게 사과하는 마음으로 다시 텍사스 땅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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