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과 내면의 두 얼굴

매일 아침잠에서 일어나 거울로 보는 우리들의 얼굴을 ‘외면’이라고 합니다. 즉 겉으로 보이는 얼굴입니다.
이 외면의 얼굴은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씻고 단장할 수 있는 겉모습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떨 거다’ 짐작할 수 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얼굴을 미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 얼굴은 때로는 ‘평안의 얼굴’로, ‘자비의 얼굴’로, ‘착한 얼굴’로 보이기도 합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이 겉모습의 얼굴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얼굴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요? 아닌 것도 사실인 것처럼, 슬픈 것도 기쁜 것처럼, 기쁜 것도 동정심을 얻기 위해 슬프게, 또는 원래보다 휠씬 더 아름답게 고칠 수 있는……
바로 그 얼굴이라는 겁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열왕기하 5장에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로부터 나병을 치유받고 감사한 마음으로 가지고 온 선물을 엘리사에게 전하려 했는데, 선지자 엘리사가 결국 사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아만 장군이 그 선물들을 가지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는 그때, “게하시”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선지자 엘리사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인데 이 “게하시”가 나아만 장군을 불러 세웁니다. 그때 나아만 장군이 “게하시”에게 묻습니다.
“평안한 일로냐?” 그랬더니 게하시가 “평안입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지금 이 평안의 모습이 진정 ”게하시”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겁니다.
“게하시”의 이 겉모습은 평안으로 보이나 실제 마음의 모습, 내면의 모습은 어떻게든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받아야겠다”는 탐욕과 물욕,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또 속이고, 감추고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룟 유다”입니다.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하속들을 데리고 오면서, 예수님께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며 입을 맞추는 장면이 나옵니다. “게하시”의 겉 모습이 평안이었던 것처럼, “가룟 유다”의 얼굴은 안녕이었습니다. 하지만 게하시의 참 얼굴, 내면의 얼굴은 탐욕이 있었습니다.
유다의 진짜 얼굴, 내면의 참 얼굴은 음모였고 권력이었고 그 뒤에는 결국 돈 이었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하는 겁니까? 사실 우리 신앙생활의 모습은 겉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속사람의 모습입니다. 영적 생활이라는 것은 바로 이 ‘속사람’의 문제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겉으로는 여전히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욕하고 저주하고, 겉으로는 반가운 척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미워하고 싫어하고,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귀찮아하고 보기 싫어하고 짜증 내고……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우리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은 겉모습에 혹 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에 혹 하십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겉사람, 겉모습을 중요하게 보셨다면, 어떻게 햇빛에 검게 그을은 거무튀튀한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셨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소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최소한 겉모습과 속 모습이 서로 다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겉 사람과 속 사람이 일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입니다.
사실 우리 믿음 생활의 모습이 뭐예요? 결국은 외면과 내면을 예수님 닮은 모습으로 가꾸어 가는 거기에 열정과 노력을 쏟는 모습이 믿음 생활 아니겠느냐는 겁니다.
우리 모두의 겉 얼굴이 위선과 거짓의 얼굴이 아닌, 진실이 담겨 있는 얼굴이 되도록 힘쓰는 것이 신앙생활 아니겠냐는 겁니다.
겉모습과 속 모습이 같은 삶을 산다는 것, 물론 어렵겠지요. 하지만 한 번 해 보는 겁니다.
왜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세상과 조금은 다르다고……
“어~ 조금 다른데……” 하며, 세상이 우리를 참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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