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신앙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는

얼마 전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습니다.
간호사가 양쪽 허벅지에 주사를 놓는데 “하나, 둘, 셋, 하고 주사를 놓겠습니다. 잠깐이니까 조금만 참으면 돼요. 아프지 않아요” 하더니 정말 하나 둘 셋 하고는 그냥 푹~ 하고 주삿바늘을 허벅지에 찌르는 겁니다. 얼마나 아픈지~ 그런데 ‘잠깐이니까’라고 했는데 정말 한~참 동안이나 주사액이 들어가는 겁니다. 특히 스테로이드 주사라 오랫동안 주사액이 들어가는데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고전 유머 중 거짓말 시리즈에 간호사들이 “주사 살살 놔줄게요, 하나도 안 아파요”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갑자기 떠오르면서 ‘아~ 미국 간호사들도 믿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잠깐(?) 해 보게 되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목회를 하면 할수록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사람에 대한 신뢰’인데 그 원인이 바로 ‘거짓’이라는 겁니다. 어떤 일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저렇게’ 이야기하면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하나 고민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또 “목사님이 그러시던데~” 하며 사실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문제는 듣는 사람이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결국 목사는 영문도 모른 채 신뢰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거짓말 한두 번 하는 것이 큰 잘못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계속하다 보면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결국은 거짓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거짓말이 위험한 것은 상대방을 속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거짓된 인생을 살게 되는 것 때문입니다. 또 더 나아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니 정말 “참”되게 살고자 하나님을 믿는 것 아니겠습니까?
잠언 12장에 보니까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은 거짓을 싫어하시는 분이십니다. 왜냐고요? 하나님은 언제나 “참”이시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거짓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소위 성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정말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선한 거짓말이든, 나쁜 거짓말이든 거짓말 자체를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하지 말자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참되게 살자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거짓이 우리를 참되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참되게 바른 신앙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짓말을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교회에 대한 거짓말, 목회자에 대한 거짓말, 그리고 이웃에 대한 거짓말은 결국은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영혼과 양심을 병들게 합니다. 그리고 아픔을 남깁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교회나 다른 목회자, 그리고 이웃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들리면 습관적으로 잊어버리려고 노력합니다.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러 보냅니다. 왜냐고요? 결국은 그것이 자신을 지키고 또 상대를 지키고 더 나아가서 서로가 영적으로 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욥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욥기 1장 1절에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말씀합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궁극적으로 ‘온전하고 정직’하였기 때문이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악에서 떠난 참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이라 말씀합니다.
거짓을 버리면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결국은 악에서 떠난 참 된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도는 정직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겁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