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철판 깔고……

“괜찮아~ 뭐가 창피해. 그냥 얼굴에 철판 깔고 해”
“야~ 저 사람, 정말 얼굴에 철판 깔았구나 뭐가 저렇게 당당해~”
“그래 그냥 해 봐~ 사람들 신경 쓰다 보면 아무것도 못 해. 얼굴에 철판 깔았다 생각하고…”
“너~ 정말 얼굴에 철판을 깔았구나? 민망하지도 않니?”

우리 말에 “얼굴에 철판 깔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때로는 뻔뻔해야 할 때, 때로는 미안해할 줄 모를 때, 때로는 창피한 줄 모를 때, 했지만 안 했다고 우길 때, 부정한 돈 받았지만 안 받았다고 할 때, 빡빡 우길 때, 자기 생각과 주장을 내 세울 때 등등에 사용되는 문장입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기는 싫지만, 살다 보면 얼굴에 철판 한두 번 깔아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결론은 얼굴에 철판을 한두 번 깔다 보면 결국은 그 철판이 굳어져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이상은 진실되이 회복되기가 어려워진다는 겁니다.
“철판이야” 한번 인식되면 이제는 대화가 거의 안됩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배려도 사라지고, 결국은 관계도 단절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옳은 것을 이야기해도 일단 철판이라는 강력한(?) 차단기가 서로의 사이에 놓이게 되니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얼굴에 철판을 깔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전혀 듣지도 않고 말씀도 없이 철판에 갇혀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주장과 자신의 의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는 겁니다.
예레미야 5장 3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의 눈이 성실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 찌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거의 멸하셨을 찌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였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아마도 요즘 말로 하면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도무지 알지 못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결국은 싫어한다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No’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하셔도 ‘No’, 여러 번 말씀하셔도 ‘No’ 심지어 한 대 때려도 ‘No’입니다. 청개구리같이 심성이 비뚤어져 이거 하라 하면 ‘싫어’, 그럼 저거 해보라 하면 ‘그것도 싫어’, 속상해서 한 대 때리면서 “좀 해봐” 해도 ‘싫어’……
정말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답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목사가 아무리 설교를 해도 속으로 ‘내가 그런 말씀 가지고 넘어갈 줄 아니? 어림없다’라고 생각하는 완고한 사람들이 결국은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여’의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세상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우리들의 얼굴에 깔려지는 ‘철판’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든지 간에 우리가 정직한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우리 얼굴에 깔려진 ‘철판’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우리 얼굴을 가리는 철판을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한 ‘우리 죄’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리가 주님 앞에 불순종의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죄인 된 우리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이상, 우리에게 무슨 ‘구원’이 필요하겠냐는 겁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믿을 수 있겠냐는 거지요.
그러니 우리 삶에 변화가 일어나겠느냐는 거지요. 다시 말해 ‘죄인이 아닌데 무슨 구원이 필요하겠냐’는 겁니다.

신앙생활, 결국은 우리의 얼굴에 가려진 세상의 철판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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