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말아야 할 길, 가야 할 길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것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더라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중에 한 가지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딱히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때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나는 지금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 또는 그리움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의 배우자와의 삶을 후회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때 “미스터 킴”이나 “미스 리”와 결혼했더라면 나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 또는 그리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수시로 두 갈래 길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두 길 가운데 어느 길을 택하든 나중에 아련한 아쉬움과 그리움만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하지만 인생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눈물을 흘리며 후회해도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사망의 길이 있습니다. 성경은 잠언서 14:12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여러분, 길이라고 다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어떤 길은 당장은 괜찮아 보이지만 따라가다 보면 죽음과 멸망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습니다. 과연 어떤 길일까요?
우리 인생에서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할 길은 가인이 택한 길입니다. 창세기 4장에 가인이 어떤 길을 택했는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가인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그의 동생 아벨이 각각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정확히 어떤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인과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는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물을 드리는 사람과 제물 모두에 문제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가인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어떤 기준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제사를 드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제물을 드리는 사람과 제물 모두에 결격사항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으시자 몹시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에게 어찌하여 분노하느냐고 물으셨고 죄가 문에 엎드러져 있으니 죄를 다스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오히려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가인의 길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앞세우고, 마음에 안 맞으면 하나님의 경고도 무시하고 끔찍한 살인도 저지를 수 있는 바로 “자기 마음대로의 길”이었습니다. 이 길은 넓어서 지금도 자신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삼고 사는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 길의 끝에는 죽음, 심판, 멸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의 길(My Way)은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할 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반드시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요? 그 길은 바로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Cross Way)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자기 마음대로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자기 부인의 길입니다. 인생 순례의 여정에서 십자가의 길(Cross Way), 예수님이 가신 길(Jesus Way)을 간 사람은 후에 이렇게 고백을 할 것입니다.

“먼 훗날 천국에서
나는 기쁨에 겨워 이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매일의 삶에서 다양한 길들이 나타났었다고,
그리고 나는 언제나 십자가의 길을 택했다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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