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인생의 시작

비전통독을 시작한 지 3년이 되어간다. 비전통독 세미나를 다녔던 셋째 동생이 2017년 1월에 시작하는 온라인 통독방에 미국에 있는 큰언니와 필리핀에 있는 둘째를 초대했다.
교회적으로는 ‘책을 백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는 의미의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고사성어를 따서 “성경백독의자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성경백독을 도전하던 때였다.
그때 나의 목표는 묵상도 아니었고 성경공부도 아니었다. 정독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90일 동안 1독을 하는 단순한 목표였다.
오디오 성경을 사용했고, 1.4배속으로 성경을 들었다. 온라인 통독방에 12명 정도가 함께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기에 우리 세 자매가 있었다. 처음이야 얼마든지 따라갈 수 있었지만 90일 이 결코 만만하지는 않았다.
90일 통독을 하면서 가장 큰 방해가 되었던 것은 내 양심의 소리였다. “성경을 이렇게 읽어도 되나?”, “읽어도 읽은 것 같지 않은데 이걸 계속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여기서 그만두고 정독으로 다시 시작할까? ”등 내 양심은 계속해서 통독을 그만두길 원했고 성경은 거룩하니 제대로 읽으라고 말했다.
물론 제대로 읽기 위해 통독을 그만두고 정독을 시작하면 되겠지만 내 약한 의지는 또 “바쁜데 이번에 말고 다음에 하지?”라는 내 양심의 소리에 설득당할 것을 뻔히 알기에 이번만큼은 양심의 소리를 끝까지 외면하리라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있는 온라인 공동체가 도움이 되었다. “함께”라는 이름은 내가 끝까지 가는데 힘이 되어 주었다. 매일의 분량을 다 읽었다고 올리는 누군가의 딸기 이모티콘이 때로는 응원의 소리로 들리고, 때로는 격려의 소리로 들렸다.
첫 번째 90일 통독을 마치고 정말 감사하고 행복했다. 무엇보다 세 자매가 90일 성경통독으로 하나가 된 것이다. 사실 둘째와의 사이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불편함이 있었는데 성경통독이 끝나고 우린 “나는 죽고 예수가 사시는 삶”이 살고 싶어 우리 사이에 있었던 문제들은 더 이상 문제시되지 않았다.
양심의 소리가 나를 괴롭힐 때 가장 힘이 되었던 예화가 콩나물 재배법과 통독의 원리였다. 콩나물 재배법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다. 희한하게도 물은 다 빠져나가는데 콩나물이 자라듯이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이 조금씩 자란다는 것이다.
90일 통독을 하며 중요한 팁을 발견했다.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라는 것이고, 매일 오늘의 것에만 충실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내 속의 타락한 양심의 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중간중간 구멍 난 90일 통독은 별 의미가 없다”라고 나를 설득한다. 그게 자신 없었던 나는 밀리지 않기 위해 매일 오늘의 분량을 읽었는데 시간 내기 어려울 때는 2배속이나 3배속으로라도 들었다. 그러면 짧은 시간에 듣고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1독을 목표로 밀리지 않기 위한 나의 전략이었지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구멍 난 90일 통독이면 어떻겠는가? 우린 그저 오늘을 살 뿐인 것을……
그렇게 시작한 나의 90일 비전통독은 3년째 이어오고 있고 혼자 읽기 아까워 함께 읽기 시작하다 보니 지금은 7개의 통독방에서 성경읽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시간이 이만큼 지나다 보니 이젠 성경이 읽고 싶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마음이 궁금해져 성경을 묵상하게 되고 성경을 공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 나는 배속을 늦췄다 빠르게 했다 하면서 여러 번을 듣다 보니 통독을 정독으로 하고 있는 셈이 되었다.
처음 통독을 하는 사람에게 90일 비전통독의 의미는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 시작으로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며 계속 반복해갈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인생으로 인도하신다.
놀라운 인생은 다름 아닌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믿음으로 사는 게 뭔지 알게되니 그 동안 내가 믿음으로 살지 않았다는 것을 제일 먼저 알게되었다. 90일 비전통독, 그 시작이 없었다면 오늘도 없었겠지……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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