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풀라고 있는 것이다.

아침부터 까미는 내 책상위에 올라와 있다. 양이는 내 의자 뒤에. 나는 지금 양이 불편하지 않게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있다. 남편이 그런다. “행복하시겠어.”
하나님의 책상에 올라가고 의자에 올라가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일까?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은 아침이다.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나는 요즘 식물들을 거실로 들여올 생각에 화분들을 정리하고 있다. 엊그제는 패티오에서 2시간 넘게 일을 했다. 내게는 즐거운 일이었다. 동생하고 통화도 하면서 쉬엄쉬엄 했는데 일을 끝내고 일어나려고 하니 몸이 힘들었다. 아마도 너무 오래 덩안 쪼그리고 앉아 있어서 그랬나보다.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엄청 힘들게 일했나봐. 몸이 아프네”
두 번을 얘기한 것 같다. 그리고 딸이 저녁을 먹고 있었고 우리는 기도하러 교회 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나는 딸 앞에서 또 한 번 얘기를 한 것이다.
“어.. 내가 엄청 힘들게 일했나봐. 몸이 아프네”
그랬더니 남편이 그랬다. “왜 자꾸 똑같은 말을 해?”
웃음이 나온다. 이 자리……
예전에 이 자리는 내가 옳고 남편이 틀린 자리였다. “나 아프다니까……”하며 남편에게 왜 공감해주지 않냐고 문제 삼던 자리다. 부부싸움이 시작됐던 자리다.
내가 왜 똑같은 말을 계속 했을까? 남편에게 엄살을 부리고 싶어설까? 남편이 아무 반응 없자 딸의 공감이라도 받아내고 싶었을까?
“왜 자꾸 똑같은 말을 해?”
그 때, 내가 뭐라고 얼버무렸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남편의 공감 없이도 나는 끄떡 없었다. 그 때의 상황이 꼭 이런 느낌이었다.
내가 무엇인가에 걸렸는데 넘어져서 아팠다기 보다는 넘어질뻔 하다가 겨우 균형을 잡고 일어나 혹여 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봤을까 창피해서 둘러보는 모습?
주일 예배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남편이 그런다.
“오늘 설교말씀처럼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나라를 붙잡고 살아요. 괜히 나 때문에 흔들리지 말고.”
내가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가 뭐야?”
“여보, 나 당신 공감없어도 이젠 흔들리지 않아요.”
이 일기를 보는 남편은 내가 왜 웃었는지 알겠지. 재밌다.
그러고 보니 토요일 아침에 운동할 때 만났던 어머니가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요. 남편이 있으니까 문제가 생기는거에요. 남편이 먼저 하나님의 품에 가고 보니 더 이상 문제가 생기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배울 길이 없어요.”
명언이 따로 없다.
문제 없는 부부가 어디 있을까? 문제 없는 가정이 또 어디 있을까? 문제 없는 교회는? 문제 없는 사회는? 있을까?
문제는 풀라고 있는 것이다.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내가 쓴 답이 틀렸다는 것이다. 복음으로 다시 풀라는 것이다. 복음으로 풀면 나오는 답은 똑같다. 나죽예사!
내가 죽고 예수가 산 자리에서 나는 하나님의 무릎 위로 폴짝 뛰어 올랐다. 하나님이 이뻐하시게 말이다.Joy!

81일차 염경희의 말통일기 (2020년10월14일 수요일)
제목: 평생웬수, 천생연분
아무래도 방송있는 날은 긴장……
아침에 운동간 남편에게 응원의 메세지가 왔다.
“당신이 하는 방송은 어떤 이론이나 인위적으로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간 자리에 남겨진 신앙고백을 전하는 시간이니까 한주간에 남겨진 증거들을 통해 성령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고 순종만 하면 됩니다. “
“No need MSG”
“당신과 당신 손에 들려진 그 이야기가 증거입니다.”
남편의 글을 읽고 생각난 말이 있었다. ‘전달자’
나는 전달자였다. 말씀을 읽고 말씀대로 살고자 삶의 현장에서 씨름하는 사람들의 신앙고백을 모아 전하는 전달하자.
오늘따라 남편의 응원이 힘이 났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에 내가 아직도 남편을 의지하고, 남편의 공감을 바라고, 남편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오늘같은 남편의 후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아니, 없었을 것이다.
오늘 응원하는 남편은 내가 바라던 남편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얻은 남편이다. 인간적인 남편을 포기하고 얻은 신앙적인 남편이다. 나는 지금의 남편이 너무 좋다.
우스운 이야기가 생각났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스피드 게임을 하는데 문제에 “천생연분”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할아버지는 자신 만만한 표정으로 “당신과 나 사이!”라고 설명을 했다. 그랬더니 한참 생각하던 할머니가 “웬수”라고 외친 것이다. 할아버지는 다른 대답이 나오니 마음이 답답하여 “두 글자가 아니고 네 글자!”라고 소리쳤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평생 웬수!”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죽을줄 몰라 내 방식대로 사랑해주길 바라는 한 남편은 웬수가 된다. 남편이 나빠서가 아니다. 내가 만든 평생 웬수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죽을줄 알아 내 방식, 내 생각, 내 느낌을 포기한다면 남편은 천생연분이 된다.
오늘 방송에서 소개한 포도원 통독방 윤혜순 사모님도 천생연분과 살고 계셨다. 윤혜순 사모님이 남편 목사님에게 말씀요약과 오디오 성경을 보내드리면 목사님은 말씀을 다 듣고는 탐스럽고 큰 딸기를 보내주신단다. 말만 들어도 스윗하다. 말씀을 먹으면 사람이 스윗해지나?
우리 통독방 모든 식구들 모두 ‘평생웬수가 천생연분이 되는 은혜’를 경험했으면 좋겠다. 나는 죽고 예수가 사시면 된다.
혼자서는 힘들어 오늘도 함께 이 길을 걷는다.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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