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률

캐나다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한 선배 한 분이 겪었던 경험을 소개할까 합니다.
아마 비웃지 못할 상황을 다들 한 번쯤은 겪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 선배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운전할 때는 서행을 하면서 보행자를 발견하면 캐나다에서 항상 하던 대로 차를 멈추고 보행자가 먼저 건너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보행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가던 차가 자신을 위해 절대로 멈춰 줄리가 없다는 강한 신념(?)들이 있기 때문인 것이죠. 간혹 차를 멈추고 기다려주는 선배의 선의를 알아챈 사람들은 너무나 황송해 하며, 급히 뛰어서 건너더라는 것입니다.
그냥 손인사하고 천천히 건너도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선배의 말을 듣고, 저는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가 먼저 멈춰서 줄 리가 없다는 신념(?)에 차서, 길을 건너지 않고 꿋꿋하게 서있던 그분들은 다른 사람들이 길을 건너기 위해서 서 있을 때, 기꺼이 차를 멈추고 기다려줄까?’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이유 없는 호의나 배려를 베풀어 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 역시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친절을 베풀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태복음 7장 12절)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곧이어 예수님은 이 내용이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이라고 강조하심으로써 구약성경이 가르치는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이 바라는 대로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성경의 중심 계명이고, 율법의 다른 계명들은 이 계명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황금률’(the golden rule)이라는 별명으로 세간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불리게 된 데는 약간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기원은 3세기 초, 로마 황제 알렉산더 세베루스(AD 222~235 제위)가 이 말씀을 귀중히 여겨 궁궐과 집무실에 황금으로 써서 벽에 붙인 데에서 기원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황금으로 기록해도 아깝지 않은 예수님의 명언이요, 기독교 윤리의 기초를 이루는 귀중한 말씀입니다. 기독교가 아닌 세상의 여러 경전에도 이와 비슷한 문구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 공자는 ‘논어 위령공 편’에서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 기소 불욕 물시어인)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표현이 긍정적인 명령이라면 공자의 그것은 금지의 명령입니다. 이 말은 성경의 말씀에 필적한다고 하여 ‘은률’(the silver rule)이라고도 합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이타심은 알고 보면 이기심의 또 다른 말과도 같습니다.
파괴적인 이기심은 ‘자기중심성’이라는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본질을 바탕으로 합니다. 나의 만족감과 행복감이 다른 사람의 그것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남은 어떻게 되든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행복감을 느끼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인을 위해서 내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이 행복감을 느끼고자 하는 것이 이타심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호 간에 일어나면 그 만족감은 몇 배로 커집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 거울에 황금률이 아름답게 새겨져서 그것을 볼 때마다 타인을 배려하는 말과 행동이 흘러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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