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옷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은 유토피아의 대명사입니다. 이 복락원에서 아담과 하와가 전혀 하지 않았던 고민 중 하나를 꼽으라면, ‘무엇을 입을까?’가 아니었을까요?
아담과 하와 이후로 인류는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해야만 했습니다. 때론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때론 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인간은 ‘무엇을 입을까?’를 생각해 왔습니다. 목적에 따라 (예복, 평상복, 작업복, 군복, 등), 계절에 따라 (여름 옷, 겨울옷, 등), 신분에 따라 (도포, 장옷, 등), 옷은 인간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발전해 왔습니다.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소설, “브리다”에서 옷은 나와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을 이루면서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문과도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기분에 따라서 옷장에서 고르는 옷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오늘 아침 출근 준비하면서, 옷장 앞에서 ‘무엇을 입을까?’ 잠깐이 씩이라도 고민하셨을 것입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고대 이스라엘의 족장들 중에서 가장 많은 조명을 받은 이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요셉을 떠올릴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을 방불케 할 정도로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의 굴곡은, 흥미롭게도, 그의 옷으로 대변됩니다. 코엘료의 표현을 빌린다면, 요셉의 옷은 그가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입혀준 채색옷은 요셉이 형제들 사이에서 어떤 존재인지 보여줍니다. 밤하늘의 별처럼 돋보였던 만큼 형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요셉은 형들에 의해 인적이 없는 광야 한 모퉁이에서 구덩이 속으로 던져졌고, 그의 채색옷은 갈기갈기 찢긴 채 피투성이의 옷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평소 눈에 가시였던 요셉을 없애기로 작정한 형들에 의해 요셉은 이집트로 향하던 카라반의 무리에 노예로 팔린 것입니다. 그의 채색옷이 찢김과 함께 요셉은 형들과의 관계는 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입혀진 것은 노예복이었습니다. 노예복을 통해 요셉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은 주인의 명령에 충성해야만 하는 명령과 복종의 관계였습니다. 철부지 응석받이로 자랐던 요셉이었지만, 노예의 옷을 입은 요셉은 지혜로운 청지기의 자세를 익혔고, 마침내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안에 집사장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 이집트는 북방 이민족인 힉소스족이 다스리던 시대여서 노예 등에 대한 신분 상승의 기회가 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더 이상 노예의 복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자리에 올랐던 요셉은 또 한번 옷을 바꿔 입게 됩니다. 바로, 죄수가 입는 수감복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인해 성폭행 현장범으로 잡힌 요셉은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요셉을 둘러싼 세상은 자유를 박탈당한 노예보다 더 비참한 상황으로 돌변했습니다. 이 죄수복을 통해 요셉이 세상과 관계를 맺었던 방식은 함께 한 정치범들과 뒤섞여 지내면서 꿈꾸는 것이었습니다. 지난날에 대한 회한, 앞날에 대한 불안이 그의 생각을 뒤덮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노예복을 벗기셨습니다. 그리고, 과거 형들의 시기로 말미암아 빠졌던 구덩이처럼 고립된 환경(감옥)에서 요셉을 침묵 가운데서 연단시키셨습니다. 다음 번 옷을 위해서 그를 벌거벗기신 것입니다.
꿈과 생각 가운데 연단되어 가던 어느 날 요셉에게 거짓말처럼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새로운 옷이 주어집니다. 바로 지배자의 옷이었습니다. 감옥에서 만난 정치범들의 억울한 사연들을 들어주던 요셉은 그들의 꿈을 해몽해준 대가로 출옥한 한 정치인의 도움으로 풀려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해몽의 비결이 파라오에게까지 알려지고 인정받게 되어 일약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총리의 관복을 통해 요셉은 자신을 둘러싼 새로운 세상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노예생활동안 체득한 섬김과 봉사의 정신으로써 세상과 관계맺은 것입니다. 그의 꿈 해몽과 지혜로운 정책 덕분에 이집트는 유래없는 극심한 가뭄과 기근을 무사히 넘기게 됩니다.
더 중요한 점은 예언의 성취와도 같이 주어진 그 관복이 요셉에게 회복의 기회를 더해준 것입니다. 대륙을 넘어서 몰아친 가뭄은 요셉의 고국 아버지의 집까지 덮쳤습니다. 비상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로 온 열 명의 형들을 요셉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도와줍니다. 결국, 요셉의 어릴 적 입고 놀았던 채색옷 (‘케토넷’으로 기록된 채색옷은 실은 왕족들이 입는 섬세한 재질의 옷이었습니다)은 어린 시절 악몽과 같았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이렇듯 네 벌의 옷으로 요약될 수 있는 요셉의 일생을 생각하고 나니, 나의 인생은 지금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문득 반추해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옷을 입고 계신지요? 혹은 다음 옷을 입기 위해서 입고 있던 옷을 벗어야 하는 과정에 있지는 않은지요?
일과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집을 나서기 전 옷을 입으면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과 관계 맺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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