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주인이 명령하면 무슨 일이나 열심히 일하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주인이 하루 일과로 정해준 일과에 따라 밭에서 감자를 캐고 있었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밭 가운데는 감자가 산더미같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노예에게 커다란 구덩이 두 개를 파고 감자를 저장하되, 한 구덩이에는 큰 감자를 넣고 또 다른 구덩이에는 작은 감자를 넣으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쉽게 일을 마쳤을 것으로 생각한 주인은 저녁 즈음 밭에 나가보았습니다. 그러나 노예는 감자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머리만 갸우뚱거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두 구덩이에는 감자 몇 알만 덩그러니 들어있을 뿐이었습니다. 너무나 쉬운 일을 시켰는데도 여태 감자 몇 알 밖에 못 담은 노예에게 주인은 버럭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인님, 어떤 일이라도 시키시면 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제발 큰 감자와 작은 감자를 고르는 일만은 시키지 말아 주세요. 감자를 손에 들 때마다 이걸 왼쪽 구덩이에 던져야 할지, 오른쪽 구덩이에 던져야 할지 도무지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주인의 꾸지람에 노예가 당황하며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생을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하면 되었던 노예는 자기 스스로 어떤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유와 권한을 가져보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땀 흘려 흙구덩이를 파는 일보다 무엇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 ‘선택’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더 어렵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도사 시절,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지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교회 익명 대화방 게시판에 어떤 학생이 재미있는 글을 올린 것을 읽은 것이 기억납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내일 학교에서 일기 검사를 합니다. 한 달치를 검사받아야 하는데 쓸 내용이 생각나지 않나요. 쓸만한 일기 내용을 아는 분은 저에게 이메일 주세요. 참고로 저는 중학교 3학년 남학생입니다.” 아마 한번씩들은 여름방학 동안 밀린 일기를 쓰느라 고생했던 진땀을 뺐던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일기를 대신 써달라고 하는 것이 마치 나대신 어떤 선택해 달라고 하는 모습과 흡사한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을 대신 살아달라고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 선택의 어려움 앞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선택을 의존하는 반응 이외에도,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선택의 순간을 미룹니다. ‘아직 마감일이 남았잖아? 내일 다시 생각하자.’ 그리고, 어떤 이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성의 없이 골라버립니다. ‘이러나저러나 별반 차이 있겠어? 빨리 해치워버리자.’ 그러나 이런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유와 권한을 가지고 결정한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따릅니다. 그리고 인생은 이 선택의 연속으로 만들어져 갑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유태인 심리학자였던 빅터 프랭클은 나치의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가족들도 모두 같은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줄을 서서 가스실에 갈 때면, 프랭클은 죽으러 가는지 아니면 죽은 사람을 치우러 가는지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방에서 벌거벗은 채 혼자 있던 프랭클은 모든 것을 다 빼앗겼지만, 그래도 아직 자신에게 자유가 남아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말이죠. 그는 ‘수용소의 혹독한 고문과 수많은 비인간적인 처우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 미칠 것인가?’는 자신이 선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유태인들처럼 모든 걸 포기한 채, 하루하루 도살장에 갇힌 짐승처럼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기억과 상상력에 의존하면서 자신의 정신과 영혼과 감정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다스리며, 고통에서조차도 의미를 찾고,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좇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죽음의 수용소’로 악명 높았던 아우슈비츠를 비롯해서 테레지엔슈타트, 카우퍼링, 투르크맨까지 총 4곳의 수용소를 거치는 동안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선택의 자유를 사용했던 프랭클 박사는 수용소에 있던 주위의 유태인들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어떤 옷을 입을까?’ 혹은 ‘점심 식사는 무얼 먹을까?’와 같이 사소한 결정에서부터 ‘어떤 직장을 선택할 것인가?’ ‘어디에 새 집을 마련할 것인가?’ 등 비교적 비중 있는 선택에 이르기까지 여러 선택들이 쌓여서 인생은 커다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 방향은 마치 강물과도 같아서 그것이 상류에서 작은 개울물로 흐를 때는 쉽게 이리저리 방향을 바꿀 수 있지만, 굽이치며 강물을 이루어 바다가 가까울수록 그 물줄기는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흘러서 돌이키기가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그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 나의 소중한 삶을 신중하고도 의미 있는 선택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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