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떠남(2) “정체감의 혼란과 성장”

이번 연재에서는 2달 전에 기고했던 “모세의 떠남”에 대해서 두 번째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캐나다에서 한인 2, 3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 초대를 받아서 다녀오신 목사님의 들려주신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강의 중 목사님 왈, “너희들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 게 있다면 뭐니?”라고 질문을 했더니, 청소년들 대부분이 ‘부모’와 ‘피부색’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 말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더라는 것입니다. 외모와 혈통 등의 문제로 갈등을 겪는 교민 자녀들의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자아 정체성의 혼란은 교민들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춘기를 지나는 청소년들이 겪는 보편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정체성의 문제는 모세의 두 번째 떠남에서 중요한 이슈입니다. 이집트 문화의 요체라고도 할 수 있는 황실에서 어린 모세가 자라는 동안 그의 민족적 정체감을 갖는 데에 결정적인 역향력을 끼친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생모 요게벳과 누이 미리암이었습니다. 모세의 갈대상자를 따라온 미리암은 파라오의 공주에게 모세의 생모, 요게벳을 유모로 소개해 주었습니다(출2:7-9). 그리하여 두 모녀는 유모로 가장해 왕궁에서 모세를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젖을 먹이면서, 걸음마를 가르쳐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가 히브리인임을 가르쳤을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어쩌면 요게벳은 밤마다 히브리인 전통 자장가를 불러주면서 어린 모세를 재웠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아브라함을 불러내셨는지, 야곱이 어떻게 12명의 아들을 갖게 되었는지, 요셉이 어떻게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는지……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모세는 자신이 히브리인임을 마음에 새겼을 것입니다.
목축업자에서 노예로 전락한 히브리인들이 강제 부역에 시달리고 있는 현장을 돌아보던 모세는 어느 날, 히브리인 노역자를 구타하던 한 이집트 감독관을 죽이기에 이릅니다. 자기 민족애에 대한 충동을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건에서 모세의 의식을 분명히 보여주는 바, 그는 히브리인 노역자를 ‘자기 형제’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출2:11). 그 이튿날 모세는 다시 노역 현장에 나갔습니다. 이번에는 히브리인들끼리 다투고 있었습니다. 같은 민족들끼리 왜 싸우냐면서 모세는 그들의 싸움을 말렸습니다. 그런데, 그들로부터 두렵고도 허망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신이 누구이기에 우리 히브리 민족들끼리의 싸움에 참견합니까? 어제 이집트인을 죽인 것처럼 우리도 죽일려구요?” 화들짝 놀란 모세는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보다 더 섬찟했던 것은 아무도 자신을 히브리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모세는 히브리인들을 자기 동포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모세를 이집트의 왕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모세는 자신의 인생 두 번째로 떠나게 됩니다. 정든 부모의 품, 자라온 땅 이집트를 떠나 도망자가 된 것입니다. 이렇듯, 모세의 두 번째 떠남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루아침에 왕자에서 살인자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이 정체감의 혼란은 그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광야로 도피합니다(출2:11-15). 히브리인 어머니 요게벳과 이집트의 공주 사이에서의 정체감의 혼란은 모세에게서 자신감을 빼앗아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서 동족들 앞에 세우려 하실 때, 모세는 주저했습니다(출4:10-13). 모세는 자신의 정체감이 무너지는 사건의 결과로 모든 것을 떠나야 했습니다.
“떠남-모험-성장·변화-귀환”의 주제는 고대 문학에서부터 등장해 온 서사의 모티프 중 하나입니다. 이 모티프에서 주인공들은 뜻하지 않게, 혹은 본인의 의지로 안주하던 거처를 떠납니다. 정처를 떠난 모험의 기간동안 그들은 온갖 위험과 도전들을 극복하면서 자아성취 내지는 성장을 이룹니다. 얼마 전에 영화화되었던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Life of Pi)”는 좋은 예입니다. 난파선에서 호랑이 한 마리와 함께 살아남은 주인공 파이는 227일간 구명정 위에서 생존 사투를 벌이면서 겪은 온갖 종류의 모험을 통해서 존재들과 관계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의식의 성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모세의 떠남은 혼란이 뒤범벅된 도피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훗날 민족을 이끌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준비하는 계기가 된 떠남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후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 도피생활 동안 하나님의 연단받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성장에는 진통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춘기’라 불리는 정신적인 진통이든, ‘성장통’이라고 하는 실제 물리적인 진통이든 간에 인간은 성장하는 데에 따르는 대가를 지불합니다. 때로는 이 대가가 너무 큰 것이어서 도저히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통의 끝에는 아름다운 열매와 결과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아 정체성 혼란의 시기를 잘 넘긴 아이들은 정서적 안정감을 되찾고 더 건강한 정신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시련을 이기고 모험을 마친 주인공에게는 반드시 “귀환”과 “회복”의 시간이 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오늘도 힘을 얻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