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투정

“진실함 속에서 투정하고, 투정 속에서 신을 발견하라”
자식을 먼저 앞세우신 슬픔 앞에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시고, 세례를 받으신 어느 노(老) 학자께서 당신의 저서에서 고백하신 내용입니다.
통증은 모든 생명체로 하여금 고통의 신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이 신음은 지금 나를 덮친 폭압적인 환경에 저항하는 소리입니다.
흑암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을 것 같은 출구를 찾아 더듬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신을 향해 구원을 갈구하는 소리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 고통의 소리와 함께 유신론자가 됩니다.
‘하나님, 만약 당신이 살아계신다면……’ 이 말과 함께 사람들은 하나님과 씨름합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고자(유신론자), 어떤 이는 하나님을 찾고자(구도자), 그리고 심지어 어떤 이는 자신이 쏟아내는 탄식과 원망과 욕을 받아줄 감정의 하수구로서 하나님을 부릅니다(무신론자). 어찌 되었건 모두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셈입니다.
이 소리들을 귀 기울여 들어보면 구별이 됩니다. 그리고, 그 탄성 가운데 우리의 마음의 소리가 들립니다.
첫째는, ‘본능적인 탄성’입니다. 뜨거운 냄비에 손이 닿았을 때, ‘악!’ 소리를 지르면서 온몸을 움츠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다른 그 어떤 것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그냥 터지는 소리입니다. “무조건” 고통을 피하고 보는 것입니다.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보호장치가 작동하는 것이지요.
어려운 일을 만나면 피하고 싶고, 돌아가고 싶고, 요령을 피우고 싶은 것이 우리의 반응 즉, 존재의 소리입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많은 경우 우리들은 이리저리 고통을 피하기에만 급급하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주는 것은 무조건 나쁜 것이고,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빅터 프랭클의 말처럼, 피할 수 있는 고통을 그대로 두는 것은 영웅적 행동이 아니라, 자기학대와도 같은 것이지만, 세상에는 도저히 피할 길이 없는 고통과 역경도 있습니다. 그때는 이 무조건반사적인 탄성은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생각하는 탄성’입니다. 본능적인 탄성은 당연한 것이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실수로 인한 고통인 것을 깨달았을 때 터져 나오는 후회와 회개의 탄성, 혹은 고난 가운데 깨달음이 있는 탄성입니다.
일종의 ‘대오각성’의 탄성입니다.
인간은 고통 앞에서 그 이유와 원인을 찾으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의 지혜서에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라고 후세에게 전했습니다(전도서 7:14). 사람은 고통 가운데 원인을 찾습니다. 이해를 구하는 물음입니다.
삶의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다면 ‘생각하는 탄성’은 깊은 시름이 됩니다. 빅터 프랭클은 위의 인용에 이어서 말하길, “ 만일 그것이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그 원인이 되는 상황은 바꿀 수 없을지라도 그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마음가짐은 선택할 수 있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의지를 수반한 깊은 시름이 가져오는 결과입니다.
노 교수께서 말씀하신 “진실함 속에서 투정하라”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철학자 손봉호 교수는 고통에는 나와 타자를 새롭게 인식하게끔 하는 강제적인 힘이 있다고 합니다.
이 시름과도 같은 투정 가운데서 우리는 이전에 미처 몰랐던 나의 모습에 대해서, 내가 몸담고 살아왔던 주변 사람들과 환경에 대해서, 그리고 신의 존재와 그분의 구원, 사랑, 섭리 등에 대해서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요즘 들어, 하나님 귀가 많이 따가우실 것 같습니다.
COVID-19 사태로 인해 고통과 불안에 처한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도처에서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이 마비된다고 하는 것은 영화에서나 본 이야기인데, 이것이 실제가 되었으니 당혹감과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투정들이 생각하는 탄성이 되어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투정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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