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각류 인간 vs. 포유류 인간

난생 처음으로 랍스터 요리를 먹었던 때가 생각납니다. 10년도 훨씬 전, 한국을 떠나기 전 성도님 한분이 귀한 것 대접해드리고 싶다면서 데리고 가신 곳이 랍스터 요리점이었습니다. 딱딱한 빨간 껍질 속에 얌전하게 앉아 있는, 버터에 잘 익은 노스름한 속살이 가볍게 터지듯 탱글탱글하게 씹혔던 식감은 지금도 기억에 살아있습니다. 비싸서 언감생심 사먹을 수가 없었던 랍스터를 미국에 오니 생각보다 저렴하게 먹을 수 있어서 신기해 했었더랬습니다.
바닷가재나 게 등을 ‘갑각류’라고 하는 절지동물의 한 분과입니다. 곤충들도 이 절지동물에 속하며, 현존하는 지구상 생물종의 80% 이상이 이 절지동물들이라고 하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수종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곤충들과는 달리 갑각류는 단단한 껍질 속으로 부드러운 살이 자라는 방식으로 성장합니다.
이들은 포유류로 치자면 뼈가 몸 바깥에 드러나 있는 셈입니다. 키틴질의 외피는 여간해선 뚫을 수 없는 단단한 보호막입니다. 단단할 뿐만 아니라, 집게발이나 꽁무니의 침처럼 날카로운 모양을 한 가시같은 껍질은 공격용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아마 게를 잡다가 집게발에 물려보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철벽같은 외피질 속은 그야말로 물러터진 살로 채워져 있으며,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살 조직은 액체 상태에 가까워져서 티끌만큼 작은 이물질이라도 들어오게 되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는 사실입니다.
갑각류와는 반대로, 포유류는 단단한 뼈가 몸 안에 있습니다. 인간의 경우, 200여 개가 넘는 이 뼈들은 몸 안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신체를 떠받쳐 유지시켜 줍니다.
그러나 연한 피부는 그대로 외부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피부 조직은 털과 지방층이 거의 없어서 추위와 더위를 견디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부드럽기 그지없는 피부는 끊임없이 상처에 시달립니다. 반려견의 발톱에 스치기만 해도 여지없이 긁히거나 심지어 찢기기까지 하는 상처를 입어보신 분들은 인간의 피부가 얼마나 약한지 잘 알 것입니다.
주변에 갑각류같은 성품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저히 뚫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자기만의 방어기재로 똘똘 무장한 사람들입니다. 그 외피는 지식의 껍데기 일 수도 있고, 과묵한 성품의 껍데기일 수도 있으며, 자존심의 껍데기일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보통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견고해 보입니다. 외부의 왠만한 영향에는 미동조차 않는 것 같습니다. 누가 자신을 공격이라도 한다 싶으면 여지없이 쳐내거나 소라게(hermit crab)처럼 단단한 집채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하지만 그 속은 한없이 연약합니다. ‘연약하다’는 것은 좋은 쪽으로는 정이 많다거나 의외로 부드러운 면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나쁜 쪽으로 본다면 자신에게만 관대하다든지 자기 연민에 빠져있다든지, 혹은 일단 뚫리면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모습들 입니다. 억척같이 살면서 인생을 일궈오던 분들이 어느날 갑자기 힘없이 무너지는 경우를 이따금씩 볼 때면 갑각류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포유류같은 성품의 이들도 있습니다. 사소한 이견이나 반대에도 고통 받습니다. 문제 앞에서 소심하거나 지나치게 신중해서 나약해 보이기도 합니다. 쉽게 상처받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속은 단단한 뼈대가 서 있습니다. 투덜거리는 것같지만 끈기가 있어서 쉽사리 포기하지 않습니다. 외부의 악재 가운데서도 항상 배우는 바가 있습니다. 한편, 상대방의 말을 다 들어주는 것같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고집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갑각류 인간인가요, 포유류 인간인가요? (‘포유류 인간’이라는 말 자체가 문법적으로 어색한 겹말이긴 하지만,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문제는 갑각류같은 사람들도 포유류같은 사람들도 자신의 겉모습에 스스로 속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혜안이 있어야 합니다. 세월과 더불어 진정한 연륜을 더해가는 사람은 자신을 더 잘 알아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자신을 알아간다’는 말은 ‘난 이런 사람이야’ 라는 스스로에 대한 지식적인 이해를 넘어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그 모습을 장점으로 만들려는 자아 개발과 성취의 노력까지 포함하는 말일 것입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잠언 20장 27절에서,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The human spirit is the lamp of the LORD that sheds light on one’s inmost being)라고 말합니다.
사색의 계절, 가을의 문턱을 성큼 넘어선 요즈음 우리의 영혼을 만드신 분 앞에서 나의 내면의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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