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행복해 지는가?

어느 주일 아침에 필자가 목회하는 교회에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목사님, 저 죽고 싶어요…” 필자에게 그 떨리는 목소리는 정말 죽고 싶은 목소리가 아니라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목소리로 들렸다.
필자도 한때는 죽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 터라 누구보다도 죽고싶은 마음을 이해한다. 왜 사람은 힘들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들까? 이민 생활을 하다 보면 행복한 순간도 물론 있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훨씬 많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부부관계가 소원해지고 자녀가 장성하면 언어장벽에 부딪혀 소통이 어려워진다. 그럴 때면 왠지 내가 왜 사는가 하는 우울하고 불안한 생각이 고개를 치켜든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있다. 조던 피터슨의 “열두 가지 인생의 법칙”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바닷가재의 뇌 활동을 통해 사람의 선택과 활동을 분석한다. 바닷가재는 서열이 아주 엄격한데, 서열 싸움에서 승자는 먹잇감과 암컷등 모든 좋은 것을 독식하며 독재자가 된다. 유일한 신분 상승의 갈림길에서 목숨을 건 서열 대결 후에 바닷가재의 뇌 속에 두 가지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승자의 뇌에는 세로토닌 비율이 높아지고 패배자의 뇌에는 옥토파민 비율이 높아진다. 세로토닌 수치가 높은 바닷가재는 자신감이 넘치고 몸이 유연해진다.
반면에 옥토파민 수치가 높은 바닷가재는 무기력하고 싸움을 피하며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 이와 같이 인간도 본능적으로 스스로에게 세로토닌 분비가 활성화되는 활동을 스스로 선택한다.
그러나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현실은 어떠한가? 세로토닌보다 옥토파민 수치를 높이는 일들이 훨씬 많이 일어난다. 유년시절부터 학업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 당하고,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며, 원하지 않는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행복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술에 의지하기도 하고, 외모에 집착하기도 하며, 돈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이 지속되면 마지막으로 행복해지기 위한 몸부림을 치게 되는데 바로 그때, “차라리 죽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찾아든다.
그렇다. 힘들면 죽고 싶은 이유가 바로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 지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 행복해지는가?
세계적인 부호 록 펠러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연로하여 몸이 쇠약해져 침상에 누워 지낼 때 가까운 친구가 찾아와 말한다. “자네 언제까지 이렇게 일에 매달려 살 것인가? 이제 벌 만큼 벌지 않았나?” 이미 천문학적 재산을 소유한 록펠러가 유명한 말을 남긴다. “….. 조금만 더 벌고 정리하겠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북극의 얼음이 이렇게 빨리 녹아 없어지는 이유는 인간의 탐욕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경험할 때는 소유할 때가 아니라, 사랑할 때이다. 간혹 남녀 간의 불타는 사랑을 위해 대기업 상속을 포기하는 드라마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그렇다. 사랑할 때 인간은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사람과 사람의 사랑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뼛속까지 남아있는 자기중심적인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만드신 창조자의 사랑을 경험할 때 인간은 그야말로 행복을 경험한다. 창조자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을 원하신다. 무엇을 해도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위해 가장 소중한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어 죄인을 대신하여 죽게 하셨다. 바로 그 사랑이 인간의 마음에 젖어들게 되면 인간은 그때야 비로소 참 사랑을 알게 되고 그 사랑이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준다.
그 사랑은 기한이 없고 식지 않으며 꺼지지도 않는다. 쉽게 포기하지도 않는다.
예수를 믿고 그 사랑을 받은 당신은 이미 행복하다. 그러나 예수의 사랑이 없는 당신은 뭘 해도 행복해 지지 않는다.
정말 행복해 지길 원하는가? 하루 종일 세로토닌이 당신의 뇌를 지배하길 원하는가?
그 사랑에 흠뻑 젖어들면 된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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