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당선 가능성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다.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트럼프는 미국의 역사상 45번째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백악관의 주인이 된다. 그때부터 유행하던 말이 바로 가짜 뉴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의 공격과 질타를 받을 때마다 가짜 뉴스라며 화염과 분노를 쏟아낸다. 트럼프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정치인들조차도 불리한 코너에 몰리면 연신 가짜 뉴스를 외친다.
물론 일부 언론이나 정치적 이해집단들이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퍼뜨리는 경우는 분명히 있어 왔다. 인터넷 기술과 소셜네트워크의 발달에 따라 가짜 뉴스는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경쟁자의 지지율도 떨어뜨리는 효과도 톡톡히 봐왔다.
댓글도 조작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가짜 뉴스 프레임은 점점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한 것보다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공격하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
다른 사람을 가짜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진짜가 되어 버린다. 나의 생각, 나의 가치관이 진짜라는 것을 어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을 가짜로 만들어 버리면 되는 것이다.
복음은 좋은 뉴스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다. 죄인들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를 남김없이 씻으셨다.
이 얼마나 좋은 뉴스 인가? 그러나 오늘날 일부 교회 혹은 목회자들 중에 자신과 다른 신학적 견해 혹은 목회적 방향을 가진 자들을 향해 당신이 전하는 복음은 가짜라며 화염과 분노를 쏟아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은 곧 자신이 전하는 복음만이 진짜 복음이라는 말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필자도 목회 초기에 이와 같은 실수를 자주 저질렀다. 좁은 생각과 편협한 신학의 테두리 안에 갇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가짜 프레임을 씌우고 의로운 칼을 휘둘렀다. 그 심리 안에는 자신만이 돋보이길 바라는 뿌리 깊은 자만과 허영 그리고 열등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와 같은 실수를 범한 적이 있다. 요한이 어느날 길을 가다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는 장면을 목격한다. 요한이 예수님께 이 사실을 알리고 당장 금지 시킬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요한의 이러한 행동이 과연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의롭고 용감한 행동이었을까? 공교롭게도 이 사건 바로 직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제자들이 어느 귀신들린 아이로부터 귀신을 쫓으려 했지만 실패한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라는 말로 제자들의 체면을 구긴다 (막 9장 18절).
귀신을 내쫓지 못한 일로 제자들은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데 이름도 없는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달려가 가짜 프레임을 씌워 버린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편을 들어주시지 않는다. 다만 제자들에게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막 9장 40절)
물론 가짜 복음도 있고 가짜 뉴스를 전하는 이단과 불건전 종교 단체들이 분명히 있다. 어쩌면 정통 기독교라 하는 교회들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열정과 전략으로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가짜를 용인하라는 말이 아니다.
흔히 복음주의 안에 있는 형제들끼리, 아니 같은 지역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동역자 끼리는 가짜 프레임을 씌우지 말자는 것이다.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믿는 자들마다 구원을 받는다고 믿고 가르치는 교회들에게는 오직 좋은 뉴스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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