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와 두려움의 때, 기도할 기회

하나님과 사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적 구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사람은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무한하시고 영원한 분이시지만, 피조물인 사람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유한하고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특별한 정체성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존재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였습니다.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27-28)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위해서 흙으로 몸을 만드셨고, 에덴의 동쪽에 동산을 만드시고 사람을 거기에 두셨습니다. 사람은 동산에 머물면서 동산을 경작하며 지켜야 하는 사명과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분명한 구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경계선인 동시에, 계명을 통해서 “죄의 존재”는 드러내시고 사람은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5-17)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하는 모든 생각의 배후에는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드러내어 보여주시는 거울입니다. 말씀의 거울을 통해서 죄가 보이면, 죄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고 죄를 처리해 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로 가야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기에, 어떤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선택하기를 하나님께서는 바라셨습니다. 죄는 간교하였고,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묻고 순종하는 선택을 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결과는 지혜를 얻은 것이 아니라 분리와 죽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사람을 찾아오셨습니다. 범죄한 책임을 서로 떠 넘기고 있는 사람과 사람을 넘어뜨린 죄를 향하여 “구원과 심판을 이루실 후손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죽어야 할 사람을 대신하여 짐승을 죽이셨고, 그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범죄한 사람의 부끄러움을 가려 주셨습니다.

●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세기 3:15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과 심판을 이루시기 위하여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 속으로 ‘여자의 후손’이 오셨습니다.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 평생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사람들을 놓아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그 분의 이름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라디아서 4:4-5)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디모데전서 2:4-5)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언제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은혜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를 가르쳐 주기를 청하는 제자들에게 그리스도 예수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나라가 임하시오며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태복음 6:9-13절)

범죄한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갈 수 없기에,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범죄한 사람들은 자기의 옳은 소견을 따라 살기에 다양한 종교가 만들어졌습니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존재합니다. 종교에는 많은 특징들이 있지만, 종교임을 알려주는 대표적이고 공통적인 특징은 “기도의 내용”에 나타나 있습니다.

● 땅에서 하늘에 닿고자 노력하고(바벨탑)
● 거룩하게 보이거나 위대하게 만든 자신의 뜻(소원)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길 원하기에
● 어떤 절대자 또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목적으로
● 정성을 다하고 간절히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생각으로
● 소원성취나 문제해결을 위하여 사람의 노력과 열심이 강조되면 바로 종교입니다.

구원은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든 종교나 열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은 범죄한 사람들을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그 열심의 증거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입니다. 범죄한 사람들의 죄값을 치르시고 의롭다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으로 부터 이 세상에 오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들이 바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도는 사람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엎드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며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삶 속에 예기치 않게 찾아 든 많은 시련들이 있거나, 온세상을 어렵게 하기에 팬데믹(Pandemic)이라 일컬어지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 아래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언제, 어디서든 기도할 수 있으니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나의 생각이나 나의 뜻 또는 문제에 대한 비책이나 현 상황의 종료를 위해서 기도할 것이 아니라, 현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자 엎드리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순종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염려와 두려움의 때를 기도의 기회로 삼는 우리의 삶이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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