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교회는 하나님 백성들의 모임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교회가 진정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돕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가 세워지도록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주님은 주님 자신의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지금도 교회를 세워가시는 주인으로 역사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때 진정한 교회로서 기능하고,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배울 때 제자의 공동체로서 자라갑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시고, 그분의 계획 가운데 공동체를 부르시며, 세상으로 교회 구성원들을 파송하여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루어 가십니다.
교회가 교회 다워지는 일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으로 세워지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기능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관점을 따릅니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께서 교회를 점검하고 세워가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교회 지체들의 행위와 수고를 알며 인내를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진리로부터 벗어나 있는 요소들에 대해서는 책망하고 지적하셨습니다. 주님은 교회 안에 있는 위선적인 부분들을 드러내셨으며, 교회 내에서 활동하는 니골라 그룹을 경계하고 멀리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계 2).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의 니골라당은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훼손하고 다른 목적으로 묶여 있다는 점을 드러내셨습니다. 결국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지는 일은, 진리 안에 질서 있게 서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니골라당이 교회를 뒤흔들었던 점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구성되어 있는 그리스도 자신을 향한 도전이었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사울)에게 예수님이 말씀한 부분을 생각하면 이 부분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독교와 교회를 핍박하는 바울에게 “너는 왜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도전하셨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은 곧 예수님을 핍박하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게 하는 일들은 곧, 예수님에게 하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핍박하는 일이 곧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과도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연결되어 있고, 성령님은 흩뿌려져 있는 이들을 교회라는 이름 아래 예수님 중심으로 모으십니다. 결국 바울은 회심 후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르며 그리스도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전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부르심을 받은 교회는, 모두가 한마음과 한뜻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 속한 모든 지체들은 서로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손과 발은 모두 귀한데, 하나는 귀하고 또 하나는 필요 없다고 여긴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공동체 속에서 쉽게 질투하고 피로하며, 열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는 자신을 필요 없는 존재로 인식하거나 혹은 다른 지체들을 이렇게 대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고, 손과 발이 서로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듯이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연합하고 하나 되며 복음의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 공동체는 권위와 질서가 분명히 필요하지만, 권위주의와 형식주의가 교회를 뒤흔들지 않도록 깨어 있는 영적인 질서가 절실합니다. 니골라당의 영향력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에베소교회의 교훈을 토대로,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과 성령님의 능력이 교회를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도록 내어드릴 수 있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 공동체는 그릇된 지식이나 분리주의를 토대로 세워지는 다른 영향력들의 긴장감이 항상 있지만, 궁극적으로 교회는 머리 되신 예수님의 뜻 가운데 서로 돕고 기능하면서 하나님의 선명한 가치와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세워지는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공동체로서 자라가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 서로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눈이 열리되, 비진리에 대해서는 분별하고, 마음을 하나로 연합하며 귀하게 여기는 넓은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고전 12: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가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교회에는 믿음이 없는 이들이 올 수 있고, 죄인들 누구나 올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있었던 분파주의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우리 안에 있는 분리적인 의식과 모임은 언제든지 교회 내에서 기능할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서로를 가치가 없는 존재나 필요가 없는 이들로 여기는 방식을 내려놓고, 모든 사람들이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릇된 사상과 지식을 따르는 영지주의적인 요소들은 배격해야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를 돕고 세워가며 그리스도를 토대로 세워지는 지체의식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계획 속에서 공동체를 선교와 사명의 자리로 부르셨고, 교회는 결코 어떤 우월 의식과 세속적인 사상에 휩쓸리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선언합니다.
고전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교회 공동체는 다른 사람에게 짐을 떠넘기거나 맡기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서로의 짐을 오히려 짊어지고 십자가에 순종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주 주님께서 기뻐하는 신앙생활에 헌신하기 위해서 보다 더 하나된 지체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벧전 5:3). 이를 위해 베드로는 교회 지체가 온전하고 겸손한 자세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드러내는 일은 “겸손”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바울도 이러한 태도를 취하였고, 자기 방식의 열심을 내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의 회복을 갈망하고 구하였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지체는 자신이 곧 교회의 한 부분임을 인식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구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릅니다.
골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사역합니다. 이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을 내려놓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가는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괴로움을 기뻐하고, 본인 역시 교회의 한 부분이며, 예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도록 자신의 삶을 드리기 시작합니다. 비록 여전히 자신의 관점으로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지만,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세우신 값비싼 교회를 인식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서 서로를 돕는 교회가 될 때 성령님이 임하시는 교회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온전한 교회로 세워져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