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술을 마셔도 되는가? (2)

지난 회에서는 성경이 술 마시는 것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성경에서는 술 취하는 것을 금한다. 알콜 중독을 금한다. 하지만 술 마시는 것, 술을 입에 대는 것까지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초기 복음이 증거 될 때부터 술이 가진 파괴력 때문에 금주 운동을 벌여 왔다.
실제로 한국의 역사 속에서 술 때문에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기록한다면 온 지면을 다 할 해 한다 할지라도 부족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은 술을 마셔도 되는가? 취하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은가? 여기에 대한 답은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필자에게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필자는 “안된다”라고 답할 것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지난번에 언급한 것처럼 술은 그리스도인들을 범죄의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술은 그 자체가 악은 아니다. 그러나 정신을 혼미하게 하여 사람들의 자제력을 잃게 한다. 하지 말아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게 만든다.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범죄에 대하여 무장해제하게 한다. 음주운전으로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죽게 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죄를 짓는 행동뿐 아니라 범죄의 원인조차도 싫어하신다.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은 탐내지 말라 이다. 이웃의 아내나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신다.
탐심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범죄 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 조금씩만 마시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술은 알콜이다. 약물의 일종이다. 인간의 특성상 술은 마실수록 자신도 모르게 중독되어 간다. 양이 늘어나게 된다. 술을 절제하면서 마시는 것이 어려운 이유이다. 어쩌면 아예 마시지 않는 것이 쉬운 일 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 이유는 음주가 연약한 그리스도인을 실족하게 만들 수 있다.
한국교회는 술을 즐겨 하는 민족성 때문에 절주가 아닌 금주를 초기 역사부터 가르쳐 왔다. 130여 년의 교회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 한국인의 의식에는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하게 되었다. 일종의 문화가 된 것이다. 여기에는 부작용도 많았지만 분명히 긍정적 요소들도 많이 있었다. 술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술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변화가 일어나 가정이 회복되는 일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다음의 상황을 발생시킬 수 있다.
알콜 중독에 빠져 있던 한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다. 믿고 보니 술을 사랑하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고 어렵게 술을 끊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식당에 가서 밥을 먹다가 자신의 교회 담임목사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가정해보자. 혹은 교회에서 존경하던 장로나 권사 집사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고 가정해 보자. 이들은 술에 대해 자유 하여 절제하며 술을 마셨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자유는 어렵게 술을 끊은 신자들을 실족하게 할 가능성이 많다.
또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경건으로 알고 세상 속에서 어렵게 자신의 거룩을 지키려는 사람을 실족하게 할 수도 있다. 필자는 어릴 적 매우 보수적인 장로교 고신 측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주일 성수, 십일조는 물론, 절대 술을 입에도 대지 말라고 교육을 받아 왔고, 그것이 믿음의 절개라 믿고 이를 지키려 애를 썼다. 그러나 군의 상황은 이를 한 층 더 어렵게 만들었다. 상명하복의 분위기에서 나 혼자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자해와 같은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필자는 꿋꿋하게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상관이 이렇게 내게 따져 물었다. “네가 뭐라고 술을 안 먹어 너희 교회 장로도 술을 마시던데..” “무슨 말씀입니까?”라고 물었다. 알고 보니 당시 필자가 다니던 군 기지 교회 장로님이 장교 식당에서 술을 마시던 모습이 그 상관의 눈에 띈 것이다.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바보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나도 남들처럼 술을 마실까 하는 마음이 머리속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어렵게 그 상관에게 고백했다. “저는 하나님과 술을 마시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위기를 벗어났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해 말한다. 고린도 교회는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그리스도인이 먹어도 되느냐 하는 문제로 씨름하고 있었다.
고린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유통되는 고기는 잡은 후 제단에서 의식을 행한 후 유통시키는 것이 관례였다. 정규시장에서 고기를 올려놓고 파는 것은 가격이 비쌌다. 신전 시장은 고기 값이 훨씬 쌌다고 한다.
유대파 그리스도인은 그것이 우상의 제물이니 절대 먹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유를 강조하는 일부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음식이니 괜찮다고 했다.
이러한 논쟁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니 제물을 먹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전에 우상 숭배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만약 그들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된다면 양심이 더러워질 수 있다. 그러니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 사는 것도 아니니 당신들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게 하라.
이어서 바울은 이렇게 선언한다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한다면 그것은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바울의 이러한 고백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근거한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

바울은 자신의 자유가 형제를 실족하게 만든다면 우상의 제물이 아니라 아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러한 형제 사랑이 있어야 한다. 배려가 있어야 한다. 돌봄이 있어야 한다. 성도가 술을 먹는다고 더 잘 사는 것이 아니고 먹지 않는다고 더 못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음주가 형제를 실족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바울처럼 외쳐 보면 어떨까?
“만일 내가 술을 마심으로 인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술을 마시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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