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하지 말라고?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십만 불이 필요하니 제게 꼭 주십시오. 기도하면 주시겠다고 하나님은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헌금 생활을 제대로 안 했던 그는 찔렸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께 서원한다. 하나님 이번에 10만불을 주시면 꼭 십일조로 일만 불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더 확실하게 설득할 아이디어가 생각이 났다. 하나님 아예 일만 불 십일조를 먼저 떼시고 제게 9만불을 주시면 더 확실할 것 같습니다.

십일조는 믿는 사람이라면 신앙생활에서 한 번쯤 고민해 보았을 문제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십일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십일조를 신앙생활에 있어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최근 유튜브가 미디어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십일조에 대해 반대하는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다.
유튜브에서 십일조에 관해 언급한 강의나 설교의 조회 수가 15만 회를 상회하고 85만 회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영상들도 있다. 이들 중 일부의 영상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상들은 십일조 하지 말라, 십일조는 없다, 십일조는 중지되어야 한다는 주장 일색들이다.

십일조는 중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분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에 한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율법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그 기능이 다했으니 이제 더 이상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은 율법주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
십일조는 성전과 관계된 기능으로 하나님께서 기업(땅)을 받지 않고 성전 일만 해야 했던 레위인과 제사장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제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성전도, 레위인도, 제사장도 제사도 필요 없으니 십일조가 중지되었다고 보는 이론이 설득력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 십일조를 폐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십일조는 율법이 있기 전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창세기를 보면 율법이 있기 이미 500년 전에 아브라함은 전리품의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드린다. 그의 손자 야곱도 환상을 보고 나서 하나님께 십일조를 서원한다.
십일조는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방식으로 존재해왔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율법이 폐지되었으니 십일조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틀리다.

또 어떤 사람은 초대교회는 십일조가 없었으니 십일조 하는 교회는 잘못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초대교회는 십일조에 관해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성경에는 초대교회의 십일조에 관한 언급이 없다.
그 대신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이 충만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쓸 것을 제외한 대부분을 교회에 헌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도행전 4장 32절-35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공산주의의 시작이 저 구절 때문이었다고 할 만큼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포기하는 헌신을 했다.
이후 초대교회는 300년 동안이나 믿음 때문에 재산을 잃고, 생명을 잃는 상황에 처해지기도 했다. 그들은 믿음 때문에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했다.
수입의 십 분의 일을 십일조로 들리느냐는 그리 큰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공산주의의 시작이 저 구절 때문이었다고 할 만큼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포기하는 헌신을 했다.
이후 초대교회는 300년 동안이나 믿음 때문에 재산을 잃고, 생명을 잃는 상황에 처해지기도 했다.
그들은 믿음 때문에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했다.
수입의 십 분의 일을 십일조로 들리느냐는 그리 큰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십일조를 반대하는 주장들이 오늘날 점점 더 힘을 발휘하고 있을까?
그것은 십일조의 문제로 부담을 갖는 성도들에게 짐을 덜어주려는 의도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물론 평안과 기쁨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며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믿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십일조를 폐지하려는 의도는 반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십일조를 반대하는 이유가 차라리 십일조는 성도들로 하여금 너무나 작은 헌신으로 인도할 수 있으니 그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면 필자는 거기에 동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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