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결혼 합법화는 인권문제인가?

지난 2015년 미국이 동성결혼을 합법화 시킨 이후로 이미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지만 동성애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한국은 유교의 영향을 500년이나 받아 왔기에 동성결혼 합법화를 강 건너 불구경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선진국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동성결혼 합법화의 파도는 한국 사회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말도 안 되는 동성애를 왜 국가가 나서서 독려하느냐는 논쟁이 있지만 동성결혼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인권의 문제라고 해석한다.
미국은 오랫동안 흑인들을 차별했다. 노예로 부려왔고, 노예에서 해방된 이후에도 흑백의 차별은 여전했다. 마틴 루터 킹의 도전 이후 1960년대가 지나서야 흑인들은 사람 취급을 받았다. 인권이라는 단어가 미국인들에게 민감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될 때, 오바마 대통령은 트위터에 이렇게 글을 올렸다. “평등을 향한 우리의 여정에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반기문 총장은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인 판결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이번 결정은 미국 인권을 진전시킨 거대한 한 걸음이 될 것이다”

실제로 동성결혼 합법과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에 하나는 인권이라는 단어다. 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수많은 정치 지도자들은 그것이 인권의 향상이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동성 결혼 합법화는 정말 인권의 문제에 있어서 진일보 한 것인가?

만약 동성결혼을 인권의 프레임으로 본다면 동성결혼 합법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권 신장을 반대하는 불순한 입장에 나도 모르게 서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동성결혼을 반대하면서도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인권이라는 프레임 때문이다. 하지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인권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이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권한을 말한다. 노예해방 운동은 인권의 문제가 맞다. 왜냐하면 그들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 권리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성애는 인권의 문제가 아닌 죄의 문제이다. 제한되어야 할 죄이다.

국가가 소수자의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을 때, 또 다른 수많은 형태의 비정상적인 결혼과 소수자의 요구를 인정해 주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국가는 선천적으로 소아를 좋아하는 소아성애자라 하여도 그 사람의 인권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리는 일부다처주의도 허락되지 않는다.
아무리 종교적 신념과 자신의 선천적 본능이 요구한다 해도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거의 가능성도 없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자신의 인권을 보장해 달라고 해도 그것이 수용되지 않는 이유는 그 권리를 인간의 기본 권리인 인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권리는 점점 더 처참하게 축소되고 있다.
국가는 오랜 시간 동안 규범과 법칙에 맞춰 사람들의 권리를 제한함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해 오는 기능을 해왔다.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동성결혼을 어떻게 일부다처주의나 소아성애자와 같은 범주로 볼 수 있느냐고 화를 낼지 모르겠다. 하지만 동성애를 단지 인권의 프레임으로 본다면, 소아성애자나 일부다처주의자들의 권리를 인권이 아니라고 말할 타당한 근거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미국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이 선천적 소아성애자와 일부다처주의자들의 합헌 요구의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국에는 모슬렘 신앙을 가진 일부다처 가정이 5만에서 10만이 있다고 한다. 유타 주에는 전통적 몰몬교 사상을 가지고 일부다처 가정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 가정은 첫째 부인을 제외한 다른 여성들이 일부다처주의를 부정하는 미국의 법에 의해 어떤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십보 양보해서 동성애와 동성결혼의 문제를 인권의 문제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동성애를 반대할 권리 또한 인권의 차원에 보장해 주는 것이 당연함에도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몇 해 전에 콜로라도주에서는 자신이 트랜스젠더라고 주장하는 고교 남학생이 여학생의 화장실을 사용하는 사건이 있었다. 학교 측은 트랜스젠더 인권이 다른 여러 여학생 인권보다 우선한다며 그 학생을 옹호해 주었다. 다수를 중시하는 민주주의의 법칙은 왜 그 상황에서 외면받았는가? 왜 대통령은 다수로 뽑고 국회에서는 다수결로 법안을 결정하는 나라가 다수의 동성애 반대의 권리는 받아주지 않는가?

인권 신장 이라는 말은 아름다운 말이다. 그러나 인권의 문제는 윤리의 문제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 때에 따라 권리는 윤리에 의해 제한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하나님은 윤리의 결정자이시다. 그분은 성경 여러 곳에서 동성애를 죄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동성애자라 할지라도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인권은 존중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하나님은 죄인도 사랑하신다. 그것이 인권의 출발이다. 하나님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도록 내어 주셨다. 죄인이라고 미움을 받고 죄인이라고 정죄 받아서는 안된다. 우리 또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고루 햇빛과 비를 주셔서 살게 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인권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공의를 요구하신다. 악을 미워하고 선을 격려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동성애를 싫어하시는 죄로 분류하셨다.

믿는 사람들이 함부로 동성애자들이 무조건 지옥에 간다고 주장하고 그들에게 신체적인 상해를 가하거나 멸시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이는 실제로 그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수천 년간 이어 온 결혼의 법까지 바꿔가면서 그것이 동성애자들을 위한 인권 신장 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결코 옳은 태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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