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구원 받은 사람은 더 이상 회개 할 필요가 없이 자백만 하면 되는가?

구원파로 알려진 교회에서 주장하는 가장 심각한 오류 중에 하나는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회개는 평생 한 번만 하고 나머지 죄에 대해서는 이미 용서받았으니 또 회개할 필요가 없이 자백만 하면 된다고 하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유명해진 권 신찬 목사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구원받은 후에 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자백을 통해서 해결하면 됩니다. 영원한 속죄는 지옥 갈 죄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회개를 통해 단번에 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 짓는 죄는 그때그때 자백을 해서 처리하고”
이러한 그의 사상은 딕욕선교사 에게 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백과 회개를 잘못 이해하고 혼돈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회개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고 자백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회개는 일생에 한 번이고, 자백은 매일매일 생활에서 따르는 것입니다. 회개는 사단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중생을 말하고, 자백은 하나님의 아들 된, 즉 중생한 자들이 생활의 잘못을 용서받는 것을 말합니다”(딕욕선교사의 양육 편지 중에서)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회개란 희랍어 메타노이아 라는 단어에서 왔고 그 단어는 잘못을 비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키는 단번의 행위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다음과 같이 발전한다. 회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인이 단 한 번만 하면 되고,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은 회개할 필요가 없다. 거듭난 사람은 회개하면 안 된다. 사람들이 회개하는 것은 진정으로 죄 사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인 가르침 아니다. 성경은 회개라는 단어를 처음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는 과정에만 사용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회개를 믿지 않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믿은 사람이 범죄 했을 때 행해야 하는 죄의 고백과 돌이킴에도 회개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미 믿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주기도문에서 가르쳐 주셨다. “오늘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예수님은 하루에 일곱 번이라고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하라고 하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메타노에오)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눅17:3-4)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후 12:21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요한 계시록에서 하나님은 요한을 통해 두아디라교회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계2:22절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여기서 사용된 회개라는 단어는 메타노이아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 말씀 들을 보면서 우리는 권신찬과 딕욕의 주장이 왜 틀린 지 알 수 있다. 회개라는 단어는 단 한 번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회개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이 범죄했을 때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비는 행위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회개에 관해 성도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가 있다. 그것은 단번에 죄 사함을 얻는 회개와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반복해야 하는 회개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록 단어는 같은 단어가 쓰였지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단 한 번으로 족하다. 진심으로 내가 하나님을 떠난 죄인인 것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이미 된 것이다. 구원받은 것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받은 것이다.
루이스 벌코프는 기독교신학개론 책에서 새 생명을 심어주는 것으로 해석되는 중생은 결코 반복 될 수 없다.’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의 회심도 또한 반복될 수 없다.(루이스 벌코프 / 기독교 신학 개론 256쪽)
하지만 육신에서 사는 신자들은 나약하여 여전히 실수로 죄를 지을 때가 있다. 비록 예수님을 영접하여 모든 죄에서 용서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나약한 육신의 욕망에 이끌려 실수로 범죄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서 지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회개가 필요하다. 그러한 죄들은 우리를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믿는 사람이 짓는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파괴 시킨다.
이사야 59장 2절의 말씀에서 너희 죄가 하나님과 너희 사이를 내었다고 하신 것처럼 죄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공급을 차단한다. 평강을 빼앗고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범죄 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조세영 대도가 또 구속이 되었다. 벌써 16번째라고 한다. 17년 전 필자가 한국에 있을 때 그는 유명한 신앙 간증자였다.
교회마다 다니면서 그는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하지만 얼마 후에 일본에 간증 집회를 갔다가 도둑질을 해서 결국 잡히고 구속되고 말았다. 그의 도박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아 계속해서 그는 감옥에서 풀렸 났다가 구속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번에는 단지 몇 만원을 훔쳤다가 잡혔다고 하니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모습은 인간의 나약함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예수님을 믿어도 그 죄성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성도들이 오해하는 것 가운데 한 가지가 죄를 지으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필자는 죄를 지어도 구원받는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성경에 그런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구원했다는 말은 많다. 이 말은 죄를 없애 주셨다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모든 죄와 허물을 덮어 주셨다는 것이다. 연약하여 실수로 죄를 짓는다 할지라도 그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그의 모든 죄는 이미 용서받았다.
이는 마치 판사가 죄인을 향해 무죄 선언을 했을 때,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죄인으로 간주되지 않는 것과 같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 때문에 우리는 이미 그러한 선언을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는 구원을 잃을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아가야 하고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선을 나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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