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세상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멈추어진 나날들 속에서 잃은 손실들은 개인을 나 국가로나 수치로 따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직도 진행 중인 이 바이러스의 공격은 제2차 대유행이 올 것이라는 예고부터 어느 누구도 앞 날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백신이 오늘 그날까지의 바램이 아마 현재 온 인류의 공통 바람일 것입니다. 백신이 온 인류의 구세주가 돼버린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일상에서 강제 해산된 날, 공포와 두려움이 엄습한 날, 그날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요?
운동을 싫어하는 필자는 작년부터 각오에 각오를 한끝에 간신히 일주일에 4일을 수영을 가는 습관을 들여서 1년이 되려는 찰나, 필자의 인생에서 정말 소소한 기념비적인 사건을 자축하려는 순간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벼르고 별러서 시작한 운동인데…… ‘망했다……’
두 달 넘게 집에서 지내다 보니 부모님이 물려주신 우수한 유전자 덕에 운동도 안 하고도 평생을 몸무게를 걱정 안 하던 필자가 저울이 닳도록 올라가 보다가 할 수없이 살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침 산책을 나섰습니다. 물론 언제든지 마음 변하면 돌아올 수 있는 거리로 동네 두 바퀴로 정했습니다. 지루하니 좋아하는 유튜브의 강의 한 편을 듣는 재미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하기 싫은 운동을 해야 하는 부담감에 두 바퀴만을 채우고 돌아오기가 급급했습니다. 한 주가 지나면서 점점 눈에 보이는 것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보는 잔디밭에서 어린 시절에 보았던 잔디씨가 맺어진 세 갈래 모양의 잔디가 보였습니다. 잔디의 모양조차도 기억 못 하듯이, 잊었던 어린 시절에 망각의 늪을 뚫고 눈앞에 펼쳐쳤습니다. 너무 오래전이라 잊고 있었던…… 지나가는 길옆의 나무 사이에는 아침 햇살에 비친 거미 집이 선명하게 보이며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또한 잔디 옆의 도보에 얼마나 많은 지렁이가 나와서 꿈틀 거리고 있고, 토끼들이 나와서 풀을 뜯고 있는지요. 무심히 차를 타고 지나던 길가의 모습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다가와 있었습니다.
산책길에서는 내가 살고 있고, 살고 있었던 같은 장소가 맞는데 한 번도 보지 못한 세계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동안 내가 계획한 대로 열심히 살면 되지, 필자가 내 생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바이러스의 공격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은 세상이 이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게 생각한 쉬운 운동조차도 말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생을 달리한 사람들, 어느 누구도 이 새로운 질병으로 갑자기 식구들에게도 전염이 염려되어서 이별도 제대로 못하고 떠날지는 두 달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단 남겨진 자로서 무엇이 소중한 가치가 내 인생에 있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가족들, 친구들, 제자들 중에도 유난히 따르는 제자들과 쌓은 정이 남달라져서 그들의 가족까지 함께 정이 들어서 만들어진 또 다른 샤인 가족들, 이들과 삶을 공유하며 사는 인생이 제가 살아가는 가치였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동안의 세월이 더 감사했습니다. 마음껏 누리며 살았기에 말입니다.
그 그리운 일상을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면서 함께 못한 아쉬움으로 모처럼 다 모인 식구들에게 그 아쉬움의 에너지를 다 모아서 섬기는 마음으로 열심히 밥을 해 주고 있는 중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일상을 감사로 돌리니 은근히 바쁘다고 안 하던 식사 준비도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며 철들자 망령이라는 우스갯소리의 주자는 아니라는 강한 부인을 해봅니다. 강한 부인은 긍정이라는데……
식사 준비를 하루하고 만 것이 아니니 늦은 나이에 철이 든 것으로 치부하며, 항상 방송과 책에서 많이 접하고 있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노 교수의 지혜와 완숙함을 조금이라도 배워가고자 노력하는 하루를 살아가볼까 합니다.
오늘 하루를 아쉽지 않게 삶의 향기로 채워가는 삶을 말입니다. 코로나 가 남은 자들의 인생에 대한 눈을 열게 한 것은, 조금 더 나누며 잘 살 책임이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아닐런지요? 오늘 하루 잘 살고 계신지요?

김주연 칼럼
Frederick George Cotman (1850 – 1920), One of the Family,(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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