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이미지

한가한 일요일의 도로길에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운전을 하고 있는데, 옆 차선에서 주행하고 있는 차의 움직임이 불안하여서 주시하며 가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차선 변경을 하며 끼어드는 순간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며 거의 멈추게 되어 필자뿐 아니라 따라오는 뒷편의 차의 운전자까지 앞 차인 필자의 급정거에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옆 차를 보니 뒤에 ‘학생 운전’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습니다. 어쩐지 이상하게 운전하더라 하며 그 운전 실력이 수긍이 가며 놀라서 화난 마음보다 부디 조심하기를 하는 행운을 빌어주는 마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작은 스티커에 붙은 노트 하나가 그 서투른 운전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입니다.

집으로 오는 운전 길에 서로를 이해하는데 이렇게 작은 노트도 도움이 되는데 우리는 과연 얼마나 소통을 하면 살아가고 있는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요즘은 미국도 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사회 뉴스를 접하면 소통을 하기 위한 노력은 이미 포기한지는 오래고 이제는 각 나라, 지역 단체, 개인이 자기의 목소리만 목청껏 높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각자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냐는 잣대에 따라서 신의에서 비롯된 동맹도, 약속도 실리에 의해 파기하는데 주저함이 점점 없어지는 세상이 되어갑니다. 오히려 신의를 지키는 사람들을 속으로 비웃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각자의 이름에 붙어진 이미지는 어떤 모습으로 새겨져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각자의 이름에 붙여진 이미지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직업의 타이틀에서 오는 이미지는 또 어떤 모습일까요?
어린 시절에 늘 등장하던 장래의 희망 직업란에 등장하던 많은 직업 군들은 사회에 기여하는 직업이 많았다고 한다면 이제는 사회에 기여하는 직업보다는 대중의 인기와 돈을 많이 버는 직업 군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물질주의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치부하는 것도 문제지만 물질주의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제는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도 무조건 적인 희생이 무의미하고 부모의 노후를 자녀에게 의존할 수가 없으니 적당히 선을 지키며 키워야 한다는 의식이 이제 공공연하게 싹트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뿐만이 아니고 6.25 전쟁을 겪었던 우리나라는 우방국인 동맹국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대한민국의 존립이 성립이 안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각국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의식이 더 팽배해지고 개인의 안위가 더 우선이라는 의식이 더 당연해지고 있는 사회 분위기에 젖어가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길일까요?

필자는 아날로그 세대에서 디지털 세대 이제 AI 세대를 지나면서 감성이 남아있고 적당히 테크놀로지의 혜택을 받았던 디지털 시대에 대해 향수를 느낍니다.
이제는 인터넷의 보급과 점점 진화되고 있는 테크놀로지의 여파로 이 시대의 흐름을 잘 탈 수 있는 소수의 승자만 남아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넘어진 누군가를 도와줄 손도 점점 희박해져가는 세상에서 점점 외로워지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이런 사회에서 혼자라도 내미는 손이 되고 싶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 조금이라도 많아질 때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느끼지 않을까요?

나의 형상은 어떤 이미지로 만들어졌을까요?
보이는 모습만이 다가 아닌데 우리는 너무 겉모습만 치중하느라 안을 못 보고 지나치는 것은 아닌지요?
안에서 투영되어 나온 이미지가 나의 진짜 모습일 텐데 모두 지나쳐 갑니다. 모두 다 지나치고 남은 자리를 채우고 싶은 그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추운 겨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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