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봉]의 한국 문화 산책: 모든 맛의 으뜸은 장(醬)이라고 하는데 …

미국의 대표적인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M. Harris)는 『음식 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소개된 그의 저서 『Cows, Pigs, Wars and Witches : The Riddles of Culture』에서 한 지역의 문화적 전통에 변화를 주는 가장 큰 힘은 고단백질을 섭취하는 생물학적 강제라고 주장하면서 줄곧 동물성 단백질이 사회 문화를 움직이는 동인이라고 주장했다. 주변을 돌아보아도 농경이 주된 생활터전이었던 우리 민족의 역사적 특성상 동물성 단백질보다는 식물성 음식을 주식으로 살아왔고, 고기나 동물성 단백질은 귀한 음식이어서 이것들이 곧 힘, 정력, 에너지, 건강 같은 말을 뜻하는 것처럼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일견 일리 있는 주장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요즈음은 동물성 단백질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오히려 비만이 되기 쉽고 각종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우리의 식문화가 건강한 식문화라는 주장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식물성 단백질 문화의 정수로 내세울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우리의 식문화로 장문화(醬文化)를 들 수 있다. 장문화에는 물론 단백질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중 콩단백질의 위대함은 알면 알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李瀷)도 콩의 위대함을 알고 그의 저서 『성호사설』의 대두론(大豆論)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콩은 오곡의 하나인데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곡식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고 한다면 콩의 힘이 가장 크다 할 것이다. 백성들은 잘 사는 이는 적고 가난한 자가 많으므로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은 다 귀한 신분의 사람에게 돌아가 버리고 가난한 백성이 얻어먹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콩뿐이다. 값을 따지자면 콩이 쌀 때는 벼와 서로 맞먹는다. 그런데 벼 한 말을 찧으면 네 되의 쌀이 나오니 이는 한 말 콩으로 네 되의 쌀과 바꾸는 셈이다. 결국 콩 한 말로 벼 여섯 되를 더 얻는 셈이 되니 콩이 훨씬 더 이익이라 할 것이다. 또한 맷돌로 갈아서 두부를 만들면 찌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것으로 국을 끓이면 그 구수한 맛이 또한 먹음직하다. 뿐만 아니라 싹을 내어서 콩나물로 만들면 가치가 몇 갑절 더해진다. 가난한 자는 콩을 갈고 콩나물을 썰어 합쳐서 죽을 만들어 먹는데 족히 배를 채울 수 있다. 나는 시골에 살면서 이런 일들을 알기 때문에 대강 적어서 백성을 기르고 다스리는 자에게 보이고 깨닫도록 하고자 한다.
성호는 이 글에서 콩이야말로 백성을 살리는 가장 유익한 식재료임을 명쾌히 밝히고 있다. 장문화의 가장 중요한 식재료가 되는 콩은 원래 만주 벌판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지만 만주라면 부여족의 옛 땅이니 콩은 우리민족과 함께 살아왔음이 분명하다. 대한제국 말기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서양 사람들은 한결같이 메주에 엉겨 붙어 있는 하얀 곰팡이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당시 그들의 눈에는 된장이 숙성되어 가는 과정이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식문화로 비쳐졌던 것이다.
사람이 음식을 먹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날로 먹는 방법이 있고, 익혀서 먹는 방법이 있으며, 발효시켜서 먹는 방법이 그것이다. 음식 학자들은 이 중 발효시켜 먹는 것을 가장 선진적인 식문화라고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된장, 간장, 고추장, 개장, 청국장 등등. 우리 음식의 기본은 대부분 콩을 원료로 하는 발효 음식이다. 물론 이 밖에 콩이 주재료가 아니지만 우리의 식단에 빠지지 않는 김치라든가 젓갈류도 발효 음식이다. 서양의 발효 음식 중에서 으뜸으로 치는 요구르트나 치즈는 동물성이지만 우리의 발효 음식은 젓갈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식물성인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 발효 음식의 으뜸으로 치는 장은 도대체 어떤 음식인가? 사람들은 장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헷갈리기 일쑤다. 장이라는 말은 중국의 문헌에도 보이기는 하지만 중국에서는 콩이 아니라 고기로 장을 만들어 이를 육장(肉醬) 혹은 해(醢)라고 불렀다. 다산 정약용도 그의 저서 『아언각비』에서 ‘장은 종류가 여럿이데 시장(市醬 : 메주로 만든 장)이 그 첫째이다’라며 콩장을 높이 평가했다. 다산의 지적처럼 장은 콩으로 쑨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콩으로 쑨 된장이 우리 장문화의 으뜸인 것은 틀림없지만 젓갈도 넓은 범주에서는 장문화에 포함되고, 숭어, 도미, 홍합 같은 생선으로 담근 어육장도 장문화의 일부이며, 김장에 명태나 갈치 같은 생선을 함께 넣어 담그는 것도 장문화의 범주에 속한다 할 것이다.
우리의 장문화는 역사가 깊다. 문헌의 기록을 보면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문왕조에 왕이 김흠운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면서 납채를 수레로 보내는데 그 목록에 쌀, 술, 기름, 꿀, 포 등과 함께 장(醬)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콩을 발효시켜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친구와 장과 술은 오래 묵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집집마다 대를 물려서 먹는 장맛은 그 집안의 살림 솜씨를 재는 기준이기도 했다. 한 때 ‘설탕문화’에 짓눌려 뒷전으로 밀려났던 장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면서 우리 고유의 발효 음식들에 대해서도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설탕의 단맛이 입맛을 당기는 마력은 있지만 건강에는 된장과 같은 장류와 비교도 안 된다고 한다. 건강을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한다면 치즈의 맛에 길들여진 우리 아이들의 입맛을 된장에 맞게 바꾸는 방법을 연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이차봉
엘림에듀(Elim Education Cente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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