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봉]의 한국 문화 산책: 곰인형은 곰 모양일까 사람 모양일까

어린 여자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인형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바비 인형(Barbie Doll)인데 이 바비 인형은 1950년대 루스 핸들러(Ruth Handler)와 엘리엇 핸들러(Elliot Handler) 부부가 창업한 마텔(Mattel) 사에서 만든 인형이다. 그리고 ‘바비’라는 인형의 이름은 부부의 딸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핸들러 부부는 이 인형을 1959년 3월 뉴욕에서 열린 국제 토이 페어에 ‘바비’란 이름으로 출시했다. 금발과 흑갈색 머리의 이 인형은 얼룩말 무늬의 수영복을 입고 수줍은 표정으로 아래쪽을 힐끔 쳐다보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1970년대 이후 바비 인형의 표정은 더 밝아지고 시선은 정면을 보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그런데 이런 바비 인형을 보고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여성의 신체 묘사와 화려한 의상, 현대적인 머리 스타일 등이 그 당시로서는 너무나 과감했던 것이다. 뉴욕의 언론이 ‘장난감 세계의 실수’라고까지 말하며 반감을 보였을 만큼 그 당시로는 획기적인 인형이었다. 그러나 바비 인형은 발매 첫 해 약 35만 개를 판매하며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이후 소설로 출간되기도 하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은 인형들을 개발하고 관련된 상품들을 출시하여 인형 하면 바비 인형을 떠올릴 만큼 인형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인형은 이렇게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기 위한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 할 수 없는 거대한 것도 있다. 동네 어귀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는 이름으로 서 있는 장승도 인형이고, 공원이나 기념관에 조각상으로 서 있는 동상도 따지고 보면 인형이다. 인형이 사람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물건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지금 인형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TV에서는 매일 인형극을 볼 수 있고 극장에 가서도 인형극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다. 아시아 인형극 대회가 1986년 이후 매년 장소를 바꾸어 가며 열리고 있고, 1941년 당시 17세로 인형극 학교 학생이었던 작크 펠릭스(Jacques Felix)의 아이디어가 시발점이 되어 결성된 국제 인형극 축제도 1961년 처음으로 개최된 이후 1972년부터는 세계적인 국제 인형극 축제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있는 마리오네트 극장을 비롯하여 체코슬로바키아의 Black Theatre, 모스크바의 국립 중앙인형극장 등은 인형극을 전문적으로 상연하는 극장이다.
영화에도 인형을 다룬 영화가 많다. 조그만 인형을 움직여 촬영하는 순수한 인형 영화도 있지만 ‘로보캅’처럼 로봇을 이용한 공상과학 영화 역시 인형 영화 중의 하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에서 교통사고나 위험한 장면 등에 사용하는 것도 인형이고, 옷가게에서 새 옷을 입고 있는 마네킹도 인형이다. 진시황의 무덤에서 발견된 엄청난 수효의 토용(土俑, 흙인형)도 따지고 보면 다 인형이다.
그런데 이 인형이라는 단어가 지금은 동물 형상에도 아무런 저항 없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래 전 어느 여자 사장이 ‘곰 인형’ 20만 개를 세계 어린이에게 안겨 주는 등 ‘인형 수출의 여왕’으로 부상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곰 인형’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곰 인형’이라는 단어가 참 이해가 안간다. 인형이란 사람의 모습을 본떠서 만든 물건이 아니던가. 그런데 곰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물건이 어떻게 인형으로 불릴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형은 인형(人形)이지 곰 인형이 될 수 없다. 곰과 사람의 모양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물건이 아닌 다음에야 어찌 곰 인형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이 조어법에 따르면 곰 모양을 한 장난감이나 조형물은 웅형(熊形)이라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말이다. 개 모양을 한 물건은 견형(犬形) 혹은 구형(狗形)이라 해야 하고, 고양이 모양을 한 장난감은 묘형(猫形)이라 하는 것이 맞다. 굳이 이것이 싫다면 영어에서 Teddy Bear 하듯이 그냥 곰돌이, 호돌이 하는 식으로 부르면 될 것이다. 사람의 모습을 뜻하는 ‘인(人)’자가 왜 동물 형상에 달라붙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인형극을 ‘괴뢰희(傀儡戱)’라 일컬었다. 괴뢰는 꼭두각시를 지칭하는 말인데 이 인형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를 조종하는 사람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꼭두각시 놀음인 ‘괴뢰희’를 ‘망석중이극’이라 불렀다. 의지할 데가 없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처지가 된 사람을 일러 ‘끈 떨어진 망석중’이라 하는데, 이 ‘망석중’은 ‘망석중이’의 준말로 나무를 다듬어 만든 인형을 일컫는 말이다. 팔다리에 줄을 매어 그 줄을 움직여 꺽죽꺽죽 춤을 추게 하는 인형이 바로 ‘망석중이’이다. 결국 이 망석중이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이 조종하는 대로, 부추기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자신의 소신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떤 사람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면 그는 꼭두각시요 망석중이이다. 한국전쟁 후에 북한이 남한을 가리켜 미국의 조종을 받는 ‘남조선 괴뢰 도당’이라 불렀고 남한은 또 북한을 두고 소련의 조종을 받는 ‘북한 괴뢰 도당’이라 불렀던 시절이 있었다. 한 사람의 지시대로 참모회의에서 그대로 발언하거나 다른 사람이 써 준 연설문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읽어 내려간 지도자를 두고 우리는 괴뢰 대통령이라 불러야 하나 망석중이 대통령이라 불러야 하나. 대통령이 탄핵되어 구속되는 모습을 보면서 한 편의 인형극(Puppet Play)을 본 듯한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가 없다.
이차봉
엘림에듀(Elim Education Cente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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