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

태양계 행성의 이름을 외울 때 사용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수금지화목토천해명’입니다. 영어권에서는 ‘My Very Eager Mother Just Served Us Nine Pizzas’라는 다소 긴 문장을 이용한다는데요. 각 단어의 첫 알파벳이 행성 이름을 말해줍니다. 2006년 여름, 명왕성이 행성에서 빠지고 왜소행성으로 재분류되면서 ‘수금지화목토천해’까지만 읊어야 하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왔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명왕성을 재분류하더라도 무게, 크기, 궤도 등등, 명왕성의 물리적 특성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하지만 명왕성의 재분류와 탐사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류는 기원전부터 밤하늘을 보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별자리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별의 움직임을 통해 많은 물리학적 사실을 알아내기도 했습니다. 천문학의 긴 역사에 비하면 명왕성은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천체입니다. 미국의 천문학자 톰보가 명왕성을 발견한 것이 1930년이니, 명왕성 발견은 100년도 되지 않은 사건이죠.
명왕성은 우연히 발견된 것이 아닙니다. 해왕성이 발견된 이후 해왕성의 궤도가 수학적 계산과 약간 차이가 나는 것을 알아낸 사람들은 해왕성 공전 궤도 바깥쪽에 질량이 큰 천체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 뒤 천문학자들은 이 미지의 천체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1930년 어느 날, 애리조나의 한 천문대에서 톰보가 명왕성 발견에 성공하였습니다. 여담이지만 톰보는 야구팀 LA 다저스의 유명한 투수인 커쇼와 친척 관계인데, 톰보가 커쇼 어머니의 삼촌이라고 합니다.
톰보는 자신이 발견한 이 행성에 플루토(Pluto)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플루토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신이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하데스라고 불리기도 하죠. 한자 문화권에서도 어두울 명(冥)을 사용하여 명왕성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비록 이름은 으스스하지만, 대중에게는 귀여운 막내 행성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천문 관측 기술의 발전으로 태양계에 있는 코고 작은 천체들이 계속 발견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명왕성 궤도 바깥에서 에리스와 하우메아라는 천체가 발견되었고,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세레스도 발견되었습니다. 명왕성을 행성이라고 분류하면 새로 발견된 천체들도 행성으로 분류해야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발생한 한 사건 때문에 명왕성 문제가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뉴욕 자연사 박물관의 부속 시설인 헤이든 플라네타리움이 2000년에 리모델링 되면서, 명왕성을 제외하고 8개의 태양계 행성만을 전시하였습니다. 시설 디렉터였던 닐 타이슨은 공개적으로 명왕성을 태양계 행성 분류에서 제외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과학의 대중화에 힘쓰며 대중에게 친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닐 타이슨이 대중의 기대와 다소 거리가 있는 행보를 보인 것이 조금 냉정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학문적 냉정함은 학문을 학문답게 해주는 힘이기도 하지요. 이러한 배경 속에 국제천문연맹은 2006년 8월 24일에 열린 총회에서 명왕성의 행성 지위를 놓고 투표를 진행하였습니다. 결국 왜소행성이라는 분류를 새로 만들어 명왕성을 이 분류에 넣기로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태양계 행성의 정의를 더욱 확실히 했는데요. 태양계 행성이 되려면 우선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해야 하고, 생성 과정에서 구형을 이룰 수 있을 정도의 질량이 있어야 합니다. 혜성 같은 돌덩어리들은 행성이 될 수 없죠. 마지막 조건은 공전 궤도에서 지배적인 천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구 공전 궤도를 공유하는 다른 천체가 없듯이 말이죠. 명왕성의 공전 궤도에는 수많은 작은 천체가 함께 돌고 있습니다. 이것을 근거로 명왕성을 행성에서 제외했습니다.
명왕성 발견자가 미국인이었다는 점에서 국제천문연맹의 이러한 결정은 미국에서 많은 반발을 일으켰습니다.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2006년 1월 19일, 명왕성을 탐사하기 위해 미항공우주국은 뉴 호라이즌스라는 탐사선을 우주로 보냈습니다.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잃기 전이었죠. 약 10년을 날아갈 계획으로 탐사선을 쏘아 올렸는데 불과 7개월여 만에 발사 목적이 퇴색해버린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뉴 호라이즌스는 묵묵히 명왕성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그러던 2015년 7월 14일, 탐사선이 명왕성에 매우 가까이 접근했고 지구로 명왕성의 사진을 보냈습니다. 사진을 본 사람들은 무생물인 명왕성에게 묘하게도 미안한 감정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명왕성 표면에 하트 모양의 지형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지구인들은 자신을 버렸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은 지구인을 사모하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죠.
뉴 호라이즌스호에는 명왕성의 최초 발견자인 톰보의 유해 일부가 실려 있었습니다. 톰보는 비록 사후이긴 하지만 약 10년의 우주여행 끝에, 자신이 천문대 망원경으로 발견했던 명왕성을 직접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명왕성 표면의 하트 모양이 유난히 컸던 것은 어쩌면 자신을 처음 발견해 준 톰보가 직접 만나러 와준 열정에 감동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명왕성
뉴 호라이즌 탐사선이 찍은 명왕성. 표면에 하트 모양의 지형이 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