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휘발유는 어떻게 다를까

휘발유 값이 2달러 이하로 내려간 지 여러 달이 지났습니다. 고급 휘발유의 가격도 같이 내려가서 한 번 쯤 넣어볼까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미국의 주유소에서 볼 수 있는 휘발유의 3가지 등급은 순도나 가성비를 나타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동차 엔진의 기술적 측면과 더 관련이 있습니다.
휘발유 등급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엔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휘발유(가솔린) 엔진과 디젤(경유) 엔진은 조금 다르게 작동합니다. 휘발유 엔진은 기체화된 연료에 일반 공기를 섞고 압축한 뒤 점화 플러그로 불을 붙여 폭발을 유도합니다. 이렇게 생긴 폭발력을 엔진 축의 회전력으로 사용합니다. 디젤 엔진에서는 불을 직접 붙이지 않고 연료 기체를 압축하여 온도를 올리고 폭발을 유도해 냅니다. 압축만으로 발화가 될 정도로 큰 압력을 가하기 때문에 폭발력 또한 가솔린 엔진에 비해 큽니다. 그래서 엔진의 큰 힘이 요구되는 대형 버스와 트럭에 디젤 엔진을 많이 사용하고 부드러운 승차감이 필요한 승용차에는 휘발유 엔진을 사용합니다.
휘발유 엔진에서는 연료가 압축되는 과정과 불꽃이 만들어지는 순간이 매우 정교하게 계획되어야만 최대의 동력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료에 따라 점화 플러그가 불꽃을 만들기 전에 폭발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디젤 엔진의 작동 원리에서 말했듯이 기화된 연료가 압축되면 온도가 상승하는데 같은 현상이 휘발유 엔진에서도 일어납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휘발유 엔진에서는 압축에 의한 온도 상승 때문에 연료가 발화하는 일이 생기지 않지만, 실제로는 연료의 구성 성분에 따라 원하지 않는 발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이 발생하면 엔진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노킹이라고 부릅니다. 노킹이 발생하면 비정상적인 폭발로 인해 엔진이 의도된 출력을 내지 못하여 연비가 떨어지고, 부품들도 비정상적인 부하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내구성에 문제가 생깁니다.
다른 석유 제품과 마찬가지로 휘발유에는 수많은 종류의 탄화수소가 섞여 있습니다. 구성 성분에 따라 노킹이 잘 생길 수도 있고 덜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를 측정한 값이 옥탄가(octane rating)입니다. 주유기에 휘발유 등급별로 적혀있는 87, 89, 93이라는 숫자가 바로 옥탄가입니다. 옥탄도 탄화수소의 일종인데, 옥탄가라고 하면 마치 휘발유에 들어 있는 옥탄의 함량을 뜻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좀 더 정확한 이름은 `노킹 방지 지수’입니다.
옥탄가가 높으면 노킹이 일어날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에 연비와 내구성 측면에서 이점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고급 휘발유는 순도가 높은 기름이라는 뜻이 아니라 일반 휘발유보다 노킹을 줄여주는 휘발유라는 의미입니다.
옥탄가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노킹 방지 지수의 측정 방식 때문입니다. 화학적으로만 생각하면 휘발유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성분 하나하나가 노킹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여 노킹 방지 지수를 마련해야겠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옥탄이라는 탄화수소를 이용합니다.
옥탄은 노킹을 잘 일으키지 않는 탄화수소입니다. 반면 헵테인이라는 탄화수소는 노킹을 매우 잘 일으킵니다. 만약 이 둘을 반반 섞으면 어떻게 될까요? 순수 옥탄보다는 노킹이 더 생기지만 순수 헵테인보다는 덜 생기겠지요. 어떤 미지의 휘발유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휘발유를 엔진에 넣고 돌리면서 일정 시간 동안 얼마나 노킹이 생기는지 측정합니다. 그리고 똑같은 빈도로 노킹을 발생시키는 옥탄-헵테인 혼합 연료의 비율을 찾아봅니다. 예를 들어 옥탄-헵테인을 90대 10으로 섞은 연료가 같은 빈도로 노킹을 발생시켰다면 해당 휘발유의 옥탄가는 90이 됩니다.
어떤 자동차들은 고급 휘발유에 맞추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비용이 들더라도 고급 휘발유를 넣는 것이 좋습니다. 자동차 회사가 높은 옥탄가의 연료에 모든 디자인을 최적화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경유에도 등급이 있을까요? 경유에도 등급이 있고 이것도 노킹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휘발유 엔진은 발화가 예정보다 너무 일찍 발생하여 노킹이 생기지만 디젤 엔진의 노킹은 반대의 이유로 생깁니다. 즉 분사된 연료가 충분히 압축되면 상승한 온도에 의해 발화하여 폭발해야 하는데 연료 구성 성분에 따라 폭발이 지연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 비정상적인 작동이 휘발유 엔진의 경우와 비슷하게 노킹 현상을 일으킵니다.
경유의 등급은 세탄가라고 부릅니다. 이 숫자가 높을수록 연료 발화가 늦지 않고 적시에 발생합니다. 옥탄가와 비슷한 방식으로 측정합니다.
연료 발화 지연이 거의 없는 세탄과 발화 지연을 많이 일으키는 알파메틸나프탈렌을 섞어서 기준 혼합 연료를 만듭니다. 예를 들어 측정 대상 경유가 세탄 50퍼센트 기준 연료와 같은 수준의 노킹을 만들어 내면 그 경유의 세탄가는 50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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