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꿈을 펼칠 그 날을 위해”-UTA 한인학생회장 김보훈 (재료공학 박사 2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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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본인에 대한 소개를 해달라.
현재 UT Arlington에서 재료공학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어요. 정확하게는 자동차 엔진오일의 첨가물을 연구하고 있죠. 엔진이 작동할 때 피스톤의 마모를 줄이는 첨가물 있잖아요. 2003년 8월에 미국에 왔는데, 한국에서는 고려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반도체에서 엔지니어로 3년간 근무했어요. 미국에 와서는 University of Wyoming에서 Finance로 석사학위를 받고, 재료공학을 공부하러 UTA에 온거에요.
친한 형이 작년에 UTA 학생회 임원을 맡았는데, 그 형이 저를 한인학생회에 소개시켜준 게 학생회와의 첫 인연이었어요. 회계를 담당하면서 조금씩 미흡한 부분들을 발견했고, 마침 개선책을 강구하던 시기에 학생회 선거가 있었죠. 회장이 되면서 “단체를 조직화시켜 학생회를 대외적으로 알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 UTA 한인학생회는 어떤 단체인가?
어학연수과정 학생들을 제외하면 약 220명이 등록되어 있어요. 어학연수 학생이 20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총 240명이라고 볼 수 있죠. 그 중 학부생이 80 정도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대학원생들이에요.
규모가 크다보니까 학생회 산하 조직도 다양해요. 우선 공부하는 학생들의 체력보강을 위해 농구, 테니스, 골프 등 다양한 스포츠 동아리도 있고, 학부생 동아리 중에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교실도 있답니다.
UTA는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평가저하 되어 있는 학교라고 봐요. 그럴수록 우리 한인학생회가 조직화를 통해 UTA를 홍보했음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 학생회 소개문도 작성하고, 후원업체와 계약서도 레벨별로 분류, 체계화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일부 사람들이 제 마음을 몰라줄 때에요. 봉사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을 “정치에 관심있냐”면서 오해하는 사람들을 볼 땐 정말 힘이 빠져요. 반면에, 자체행사 후 “잘했다, 수고했다”고 격려받을 때 가장 보람을 느끼죠.
▶ UTA 학생들과 지역사회에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우선 UTA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학생회가 항상 여러분들의 곁에 있다는 거에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땐 언제든 학생회를 찾아주길 바래요. 한인 학생들을 도와주는게 우리의 목적이자 역할인 만큼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또한 지역사회에는 보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려요. 재학생들 모두 훌륭한 인재들인데, 종교단체 외에는 한인사회 단체들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 안타깝죠. 그런 의미에서 지난번 한인회 취업세미나는 효과적인 이력서 작성법과 같은 깨달음을 얻고, 지역사회 단체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자리였어요.
▶ 꿈이 크다고 들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중국에서 사업을 할거에요. 앞으로 2~3년 안에 박사과정을 끝내고 중국으로 건너가서 2년 정도 경험을 쌓으면 차차 제 사업을 펼칠 계획입니다. 어려서부터 그게 꿈이었거든요. 일단은 ‘기술영업(Technical Sales)’을 시작할 거에요.
지금껏 금속공학, Finance, 재료공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한 건 다 사업을 위한 준비단계인 셈이죠. 넓은 분야의 포괄적인 경험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는 페인트칠, 접시닦기, 한국에서도 조명기사, 전단지 배포, 막노동, 과외… 여러가지 아르바이트 많이 해봤어요.
사람들은 “추진하는 일이 있으면 조용히 물밑작업을 해야하는데, 당신은 왜 그걸 떠들고 다니냐”고 물어요. 맞는 얘기지만, 저는 생각이 조금 달라요. 저같은 경우 실천하기 위해 말을 해요. 한번 한 말은 꼭 지키기 때문에 꿈을 이루기 위해 말을 하는 거에요.
뿐만 아니라 철저한 시간관리와 의지력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방법이죠. 반드시 중국에서 제 꿈을 펼칠겁니다.
▶ ‘한다면 한다’는 성격으로 인한 에피소드는 없는가?
재미있는 일례로, TV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군대에 있을 땐 일요일 아침이면 다들 TV를 봐요. 그 중 자주 보던 프로가 MBC ‘사랑의 스튜디오’ 였어요. 그 때 동료들에게 말했죠. “제대하면 나 저기 나간다.”
“나갈테면 나가봐라”며 다들 코웃음을 치더군요. 어떻게 된 줄 아세요? 제대해서 취직 하자마자 3개월만에 방송 나갔어요.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출연했답니다. 방송국에 전화해서 “출연하고싶다”고 신청했어요. 방송국측에서도 저같이 ‘자원’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학력이랑 직업이랑 자료를 보내라고 하더라구요.
2000년 10월에는 짝이 안됐어요. 화살표를 2개 받았는데 저는 다른 여자를 찍었거든요. 12월엔 패자부활전에 또 나갔죠. 역시 화살표 2개 받아 그 땐 커플이 됐어요.
지금 아내가 그 사람이냐구요? 아니요. 당시 커플이 됐던 여자분이랑은 방송 끝나고 딱 한번 만났나봐요. 서로 너무 다른점이 많았어요.
뭐 조금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어쨌든 말로 한 것은 꼭 지키는 성격에서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였어요.
▶ 행복한 부부, 결혼생활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아내(전민영)와는 한국에서 성당을 다니다 만났어요. 아내는 공예를 하는 예술가였는데, 성당에서 성경공부를 함께하며 친해지게 됐죠. 나중엔 성경공부 모임에 저희 둘만 남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창세기 하나는 완벽하게 끝냈어요.
지금은 포트워스 한인 순교자 성당에 함께 나가고 있어요. 둘 다 외향적인 성격이라 사람들과 밝게 잘 어울려요. 유학생들을 포용해주는 이곳 분위기에 특별한 어려움 없이 지내긴 하지만, 역시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나봐요.
힘든 유학생활엔 아내의 도움이 컸어요. 특히 와이오밍에서 수학하던 시절, 부모 도움없이 학교다니고 생활하느라 살림이 무척 빠듯했죠.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피자를 사주시는 날이면 항상 한 두조각 챙겨다가 가슴에 품고 아내에게 가져다주곤 했어요. 저를 100% 믿어주고, 항상 지원해주고, 또 늘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제 아내 없이는 지금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에요.

온 마음을 가득 채운 자신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인터뷰였다. 비록 2~3년 후엔 이곳을 떠나지만, 장차 넓은 중국땅에서 한인 사업가로 우뚝 설 모습을 기대해본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중국 어느 신문에 ‘성공 사업가 김보훈’이라는 이름이 찍힐 때 즈음, 이곳 DFW에서 품었던 꿈과 열정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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