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현 – 충남대 공대 바이오 응용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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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님 영광 위해 충실한 삶 추구”
충남대 공대 백두현 교수가 텍사스대(UTD) 교환 교수로 지난 1년간 달라스에 거주하며, 전공 관련 연구는 물론 지역 한인 교회에서 장로로 봉사하다가 15일 달라스를 떠나 한국으로 귀국한다.

서울대 동문회 모임이 나 재미과학기술자협회 모임 등에 모습을 비치는가 하면 달라스 한인 커뮤니티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면서 바쁜 1년을 보낸 백 교수를 만나 지난 1년 달라스 생활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교수로서, 그리고 교회 장로로서 봉사하는 삶의 우선 순위에 대해, 한국 교육과 미국 교육에 대해 느낀 점에 대해, 한인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들에 대해 물어 보았다.  <대담·글  : 이준열 뉴스코리아 편집국장>

달라스의 UTD 교환교수로 와 계셨는데,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가 있나요?

“UTD 화학과의 양덕 주 교수를 알게 되어 오게 되었어요. 그분은 삼성에도 오래 계셨고 또 듀 퐁에서도 근무하셨는데, 그 분을 누가 소개해줬어요. UTD의 NanoTech Institute에 레이 버만(Ray Baughman)이라고 유명한 교수가 계시는데 그 분이 하고 있는 연구 중에 제가 관심 갖는 게 있어서 함께 연구하고 싶 어서 왔습니다.

1년 정도 있었는데 이제 제가 할 일은 다했고, 여기 학생 하나가 남아서 올 여름까지 계속 연구하게 되는데, 앞으로 연구가 마치면 그동안 얻어진 결과로 국제공동연구 등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달라스는 첫 방문이신가요?

“첫 방문입니다. 미국은 두번째입니다. 97년에 메사추세츠 에머스트대에 1년 교환교수로 와 있었습니다. 교수들은 1년씩 하는 방문이 대부분입니다. 출장은 자주 하지만.”
본인 소개를 한다면요.

“1977년 서울대 공대에 입학해 87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지금은 충남대 공대 바이오 응용화학과 교수입니다.”
이곳에서 연구한 분야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 주시겠습니 까.

“UTD NanoTech Institute가 유명한 곳입니다. 버만 교수가 디렉터로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카본 나노튜브(Cabon Nanotube)로 섬유(fiber)를 만드는데 있어 세계적인 선두자라고 할 수 있죠. 카본 나노튜브를 응용할 길이 많은데, 그 분은 드라이(dry) 공법으 로 파이버를 만드는데 저는 제 방식인 웨트(wet) 프로세스로 만들어 보고 있거든요.

카본 나노튜브가 고가로서, 이것을 파이버 형태로 만들게 되면 아주 다양하게 응용할 수가 있어서 연구를 많이들 하고 있죠. 그 분야에서는 버만 교수가 특히 앞서 있습니다. 얼마적 작고 한 알란 맥디야미드(Alan MacDiarmid, 2000년 화학 노벨상 수상) 교수가 먼저 UTD에 영입되고, 그가 버만 교수를 영입했습니다. 그래서 UTD의 간판격으로 부상해, 텍사스에서도 펀드를 많이 받고, TV에도 자주 나오며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분이거든요.

이 분야는 기술적으로 크게 발달한 상태는 아니지만, 드라이 공정법은 많이 발전되어 자리잡은 상태입니다. 버만 교수와 다른 아이디어로 저는 연구 중입 니다.”
연구를 통해 추구하는 게 있나요?

“저는 고분자와 섬유를 공부했기 때문에 카본 나노튜브가 최근 관심을 갖는 재료라 연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분야는 기초 기술을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에 따라 주도권을 쥐게 됩니다. 그래서 저도 몇년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UTD에서 연구한다고 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발전 단계의 분야죠.

저와 같이 연구하고 있는 기업 들인 효성이나 코오롱이 있지만, 아직은 학교에서의 기초 연구를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한 단계입니다. 기업이 아직 달려들 상황은 아니지만, 완 성되면 회사들을 통해 상업화하는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신앙에서도 열심이라고 들었습니다.

“대학 1학년 때인 1977년에 우연한 기회로 교회 나가게 되었고, 지금은 장로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달라스에 와서는 달라스 연 합교회에서 봉사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오랫동안 청년들을 지도했습니다. 전 성경 연구 하는 것을 기뻐했어요. 또 청년을 지도하다 보면 거의 전도사 수준으로 봉사하게 되고, 성경을 알아야 가르칠 것 같아 성경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강의도 듣고 혼자서 연구하기도 했던 것이죠.

달라스에 와서는 청년 성경공부와 구역 예배를 인도하면서 섬겼습니다. 원래 장로라는 직분이 섬기라 는 직분이니까 열심히 신앙생활 하려고 노력했던 것이죠.”
교수직과 신앙을 잘 병행할 수 있는 비결은요?

“저 를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제가 여기서 사는 이유도 하나님이 삶을 연장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는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일이 대학에서 이뤄질 수도 있고, 발명이나 발견을 통한 인류 공헌을 통해서, 혹은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 게 예수 전하는 것, 교회에서 직분과 상관없이 봉사하는 것 등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믿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 되 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난 너를 볼 때마다 기쁘다, 넌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고 말하시면 그게 하나님이 원하는 삶이라고 봅니다.

말씀대로 살면 가장 하나님께 합당한 것 같아요. 가장 쉽게 하나님 뜻대로 사는 방법이 바 로 말씀대로 사는 것이겠죠. 내 삶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오늘 하루의 주인도 하나님이라고 인정하면, 시간을 쓰든, 돈을 쓰든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요.”
신앙 유지를 위해 어떻게 하루를 보내시는지.

“아침 첫 시간을 하나님 과 교제하려고, 또 말씀 묵상하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말씀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깨닫는대로 바뀌는 것도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구 체적으로 요구하는데 내 마음이 원하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런 갈등을 극복하면서 신앙이 성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차츰 그런 것을 컨트롤하는 힘이 생기는 것이 신앙의 성숙인 것 같습니다.”
신앙의 갈등은 없었나요?

“87년 학교 졸업 후 SK 케미칼 연구소 에 있으면서 현장 공부를 한 뒤 92년에 충남대 교수로 시작해 지금까지 왔는데, 신앙은 계속 유지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그동안 신앙을 한번도 떠나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첫 2년간은 잘 모르겠지만, 대학 3학년 때부터는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사실 struggle할 이유가 없었어요. 공부도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야 하는거고, 내가 하는 일이 또 궁극적으로 하나님 영광 위한 것이라 면, 공부든 연구든 목회든 상관없다고 믿었거든요. 80년대 데모 등으로 대학이 한동안 쉴 때, 충현 교회 도서관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면서, 거 기 있는 수많은 신학 서적들을 꺼내서 읽고 성경을 깊이 아는 기회가 되었어요. 그 때 깨달았습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깨닫는 게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요. 그래서 신학교 갈까 하는 갈등도 있었지만, 결국 연구의 길로 정했습니다. 그 때 친했던 친구 4명이 있는데 두명은 공대 교수, 두 명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같이 모여서 성경 읽고 연구하기도 했던 교회 친구들이었습니다.”
목회를 하고 싶어했다는 뜻인가요?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보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가 중요합니다. 연구 쪽으로 갔을 때, 그 때도 분명 기도했었고, 하 던 공부를 계속 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또 다르게 인도하신다면 따를 것입니다.

그 때도 누 가 ‘전공이 뭐냐’고 물으면, ‘following  Jesus’라고 말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목회자로 따라 가야 하는 것 은 아니니까요. 하는 일을 통해서 각자가 제자로서 살면 된다고 봅니다. 평신도로서, 공학도로서,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일이 있을 것이라 믿 었기에 그 길에 순종했던 것이지요.”

어려서부터 열심이고 공부도 잘하셨나 봅니다.

“예수 영접 후 성격의 급격한 변화는 없었지만, 기질로서는 신앙생활하면서 좀 더 성경적으로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 나 하나님은 각각의 기질대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 성격은 밖에서 액티브하게 활동하기보다는 안에서 연구하고 책 보는 스타일인 데 그것을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부인은 어떻게 만나신 건가요?

“아내는 교회에서 만나서 88년에 결혼했습 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배우자와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기쁘구나,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전 제 아내를 동역자라고 생각하고 있 고 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는 둘인데, 큰 애 아들 승윤은 16세이고 작은애는 딸 지윤으로 터울이 많이 져서 8세입니다.”
아 이들에게 강조하는 교육관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아이들에게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며 성령을 인정하며 따라가는 삶을 강조합니다. 어디서 살든, 몇살이든 신앙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라는 거죠.”
달라스에 살아 보시니 어떤가요?

“달라스는 워낙 보수적이고 기독교적인 분위기가 강해서 좋습니다. 제 가 있던 에머스트대는 근처에 스미스 칼리지가 있는데 동성연애자가 많은 학교였습니다.
동부가 많이 리버럴한데, 여기는 보수적이라 지나 가면서 술집도 잘 안보이고, 유흥시설도 없는 게 좋아보였습니다. 아이들 공부시키기엔 좋은 곳이고, 한국보다는 덜 유혹을 받는 곳 같았습니다 .

한국은 주변 유혹이 너무 강합니다. 좁은 땅덩어리에 돈이 되면 무엇이든 너도 나도 하고 있어서 ‘타락지수’가 여기보다 훨씬 더 높다고 봅니다.

교회는 여기 한인교회 분위기가 모국교회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한국은 교회 성장이나 훈련 등에서 이미 성공적인 교회가 많고, 해결책이나 대안이 많이 제시되는데 비해 이민교회는 이제 각각 고민하면서 각 교회마다 해결해 나가기 위 해 고심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만난 분들은 주로 교회에서 만난 분들인데, 이민 온지 오래된 분들이나 나이든 분들 은 대부분 안정되어 있고, 젊은분들은 막 이민사회에서 고민하면서 사는 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달라스 규모로 봐서, 이민사회가 안정되어 있 는 것 같으면서도 또 내적으로 각각 고민이 없지 않아 보였다고 할까요.”
한국 교육과 미국 교육의 차이점을 느끼신 게 있으신가요?

“한국의 대학생과 미국의 대학생은 많이 다릅니다. 한국은 대학 들어갈 때까지 매우 열심히 하고, 그 뒤로 좀 쉬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의 교육 체제는 대학 입학하면 중간 군대 가는 것 아니라면 대부분 4년에 졸업합니다. 미국은 그렇게 4년에 졸업하 는 비율이 많지 않습니다. 즉, 한국은 어린 아이들이 어릴 때 가졌던 꿈이 많은데 대학생 되고 나이들어 갈수록 꿈이 점점 축소되고 지극히 안 정지향적이 되는데 비해, 미국 학생은 어릴 때 가졌던 꿈을 대학생 때에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국도 일본도 교육이 현실안주형 경향이 심합니다. 대학 들어오면 많은 경우 보다 안정된, 좋은 직장 갖는데 중점되어있고 다양성이 많이 축소되 어 있는 편입니다. 미국 대학생은 이거 하다가도 아니면 바뀔 수도 있도록 사회 분위기가 허용되고 있다는데서 다양성이 있다고 봅니다.”
과학자로서 보는 견해가 있다면요?

“과학자로서, 한국 대학 교육은 다양성을 많이 제한하고 있다고 봅 니다. 한국 교육의 특징이 고교생을 비교해 볼 때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 성적을 보면 한국 학생이 잘합니다. 하지만 시험성적은 좋을 지 모르 지만, 과학만 봐도 학생들이 뭔가를 해보고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책에서 이해하고 그 안에서 암기하는 식입니다. 그래서 창의력이 떨 어지는 게 현실입니다. 미국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과정을 중요시하는 편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공부하는 기본적인 원리를 배 우게 되고, 그렇게 쌓여진 것이 나중에 전공 공부에 들어가서 저력이 된다고 봅니다.”
어떻게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보는지요?

“너무나 많은 것을 나열해서 암기 위주의 교육을 시키는 게 한국 공부의 현실입니다. 아이들이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식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경쟁에서 이기는 아이가 더 잠재력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경쟁이 아니고, 만약에 과정을 다 하나하나 중요시하는 공부였다면, 그런 경쟁에서 이기지 못했던 아이들도 얼마든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도 있었 을 것이라는 거죠.

그렇게 좋은 성적 받아 의대 가고 좋은 대학 가는 것에 대해, 물론 경쟁 통해 더 잘해내서 간 것은 인정하 지만, 그토록 좋은 성적 나온만큼 인류에 기여하고 훌륭한 것들을 찾아낼 수 있을 지식까지 축적되어 있느냐는 의문이라는 것이죠.”
한국에 돌아가면 어떤 생활이 기다리는지.

“학생들 가르치는 일과 연구하는 일에 복귀하는 셈이죠.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서, 직업은 교수지만 그 모든 일의 목적과 방향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러다가 언제 든지 어떤 콜링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시니까 순종할 계획입니다. 사실 저는 영리하거든요. 그러니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다면 따르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중요한 결정이나 계획을 하나님이 알게 하실 때는 본인이 알 수 있게 하시거든요. 매일 매일 삶 속에서 내 길을 하나님이 인도하길 구하는 생활을 한다면, 말씀을 통해서든 주변 환경이나 사람을 통해서든 알려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순종할 수 있는 마음자세죠.

교수 일에 대해 하나님이 브레이크 걸지 않으신다면 그대로 할 것이고, 다른 부르심이 있다면 순 종할 것입니다. 방향 전환이 필요하면 그 때 그 때 하나님이 이끄시는 것은 느낄 수 있겠죠. 돌아가 장로로서 교회에서도 열심히 봉사할 것이구 요.”
달라스에 다시 올 기회가 있나요?

“교수들은 1년 정도 외국 방문을 하게 되면 대개 4, 5년은 다시 나오기 어렵습니다. 또 한국에서의 연구도 있고 해서 밖으로 나오면 불안하긴 하죠. 그러나 달라스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연구 때문에도 다시 몇번 올 수 있지 않을가 싶습니다.”
달라스 분들께 인사말씀을 전해주세요.

“교회 분들과 친하고 지냈고, 다들 워낙 잘 해 주셔서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주일에 교회 분들에게 말씀 드렸지만, 고국의 영광이 우리의 영광이고 고국의 부끄러움이 우 리의 부끄러움이 되는 걸 염두에 두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다들 한국 소식 접하시고 고국에 대한 애착을 갖고 계시겠지만, 여기 살아도 우리는 한국 사람이고, 그런 아이덴티티를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이민사회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 가 싶거든요.

기도하는 분들은 고국을 위해 더 기도해 주시구요. 한국이 경제적으로나, 또 영적으로 잘 되어야 여기 계신 한인 들에게도 기쁨이 되지 않을까요.

몸은 여기 있지만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사시길 바랍니다.”

;   이준열 기자 editor@w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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