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익환: 바이올리니스트/인디애나 음대 교수

/data/uploads/images/0.jpg “음악에 대한 이해가 표현으로 나타나”
오는 24일(금) 달라스 박물관에서 오후 8시에, 그리고 26일(일) 아이즈만 센터에서 오후 2시 30분부터 열리는 CMI(Chamber Music International) 시즌 연주회에 배익환 바이올리니스트가 초청 연주자로 화음을 선보인다.

인디애나 음대 교수이기도 한 배익환 바이올리니스트는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이반 갈라미언 교수에게 사사했고, 19세 때 코네티컷 주립대 교수로 임명되어 3년간 가르치기도 했다. 1985년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연주가로 활약해온 배 교수는 CMI와의 협연을 위해 매년 달라스를 방문했다.

이 지역 한인사회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익숙해져 있는 배 교수와 음악 이야기와 연주회 관련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서울에서 연주회 중인 그를 전화로 만나보았다.
▼ 한국에서 무슨 연주회를 하고 있는지.

1996년 창단된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하고 있다. 내가 악장인 화음은 ‘그림 속에 음악, 음악 속의 그림’이란 뜻으로 지휘자 없이 19명의 연주자들이 화음을 맟춘다. 모두 개성있는 중견 연주자들로 구성되었고, 지난해 10주년 기념 공연을 펼친 바 있다.

▼ CMI 시즌 공연에 매년 참여하는 것 같은데.

임정신 첼리스트(필립 루이스 단장 부인)와는 아주 오랜 지인 관계다. 또한 내가 뉴욕에 있을 때 대형 음악 시리즈 감독을 맡았었기 때문에 CMI가 여기서 태동할 때 나와 의견을 많이 나누었고, 그 인연으로 CMI 창단 때부터 거의 매년 공연에 참여하게 되었다.

▼ 줄리어드 음대에서 수학한 것으로 아는데.

내 나이가 벌써 50이 다 되었으니 오래전 이야기다. 그 때는 한국 남자는 군대 문제가 가장 컸다. 국제 콩쿠르에서 1등을 해도 지금처럼 군대 면제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줄리어드에서 1년 수학하고 자퇴한 뒤 일자리를 찾았다. 운이 좋았는지 19세에 인터뷰 결과 코네티컷 주립대 교수로 임용되었고, 그래서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 때 5.16혁명 기념상 대회에서 특상을 받아 여권을 받을 수 있었고, 그래서 14세 때 미국으로 올 수 있었다.

▼미국에 오고 싶어한 이유가 있었다면?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미국에 가서 바이올린을 공부할 결심을 했었다. 바이올린은 5세부터 배우기 시작했는데, 부모님은 그쪽과는 전혀 상관없는 분들이셨다. 그래서 내가 미국에 혼자 가서 바이올린 공부를 하겠다고 하자 놀라셨고, 반대도 하셨다. 한편으로는 부모님이 전혀 그쪽에 대해 모르시니까 그게 장점이 되기도 했다. 즉, 바이올린에 대해 모르시니까, 내가 하는 것이 모두 좋아 보이셨는지 다 잘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지금의 부모들은 너무 많이 알아서 자녀들에게 요구도 많고 조금만 못해도 주눅 들게 다그치기도 하는데, 그게 역효과일 수도 있다.

▼ 미국에서 힘든 점이 없었는지.

돈이 없어서 초창기에 고생을 많이 했다.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힘들게 살았는데, 그 때 고생한 것이 내 삶에 큰 도움이 되었다. 젊은 나이여서인지 그 모든 어려운 일들이 나에겐 fresh하게 다가왔고, 어려운 일들을 해봤기 때문에 성인이 되면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걱정하지 않는 성숙함을 갖게 된 것이다.

또한 그 때 고생이 내 음악적인 깊이를 더해주는 경험들이었다. 내 음악 철학이라면 바로 작곡가가 해놓은대로 연주하되, 그 안에 내 삶을 담는다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부인은 피아니스트라고 들었다.

결혼 16년차인데, 아내(피아니스트 임성미)가 지난해에 1년간 연세대 초빙교수도 가 있었던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아주 힘들게 살았다. 우리 집에는 7살인 아들이 하나 있고, 개가 4마리나 있는데, 아들 학교 보내는 일, 개 산책과 먹이 주는 일 등을 1년간 도맡아 하다보니, 아내라는 존재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같이 듀오 무대를 펼치면서 함께 많이 공연하는데, 결혼 초기에는 서로의 음악을 간섭하게 될까봐 결혼 초기 3, 4년간은 같이 연주하는 것을 피했다. 그 뒤 부부로서 서로 적응되어가는 과정을 겪은 뒤 비로소 함께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아주 훌륭한 듀오를 이루고 있다.

▼바이올린을 배우는 가정에 대해 충고 한마디.

인간성이 바탕이 되었으면 한다. 바이올린 하나에만 매달리기보다는 음악 전체를 이해하고 즐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한국적 교육은 급하고 경쟁이 심한 상태에서 음악을 느끼기보다 테크닉적으로 앞서나가기만 하려는 성향이 있는데, 대학교에 가고 또 대학교를 졸업해 job을 찾을 때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음악인은 파가니니를 빠르게 연주하는 사람보다는 세컨드 바이올린이라 해도 앙상블을 이뤄서 화음을 만들어내는데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성향은 자기가 좋아해서 전체적으로 음악을 즐기고 이해하며 서두르지 않고 가기 때문에 긍극적으로 표현 능력이 더 뛰어나게 된다. 음악을 결국 표현이기 때문에 그 자질이 갖춰져야 진정한 음악인일 수 있다.
배 교수는 7살난 아들에게 바이올린을 시키고 있지만, 본인이 직접 가르치진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기 제자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데, 아들에 대해서는 기대와 욕심이 앞서서인지 서두르게 되기도 해서 그렇단다.

달라스에 올 때마다 그는 삼문그룹(회장 문대동) 집에서 머문다고 한다. 피아노 스승의 중매로 부인과 만나게 되었다는 배교수. 그 부인과 문 회장 며느리가 같은 피아노 스승에게 배운 제자란다.

그의 달라스 공연이 기다려진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