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완 레투너대학 교수- “미국 대학 교수로서 실력과 신앙 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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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에서 하이웨이 20번을 타고 동쪽으로 1시간 반 정도 가다보면 롱뷰(Longview)라는 도시를 지나게 된다. 그곳에 레투너(LeTourneau) 대학이 있다. 한인들도 거의 없다시피한 롱뷰라는 도시의 레투너 대학에 의외로 한인 교수가 있어서 반가웠다. 김준완 교수(37세)다.

전기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데, 어떻게 롱뷰의 레투너 대학의 교수로 가게 되었는지, 또한 레튜너 대학은 어떤 대학인지, 그리고 그가 그곳에서 펼쳐가고 있는 학문적, 인성적 목표는 무엇인지 들어보기로 했다.

▼ 레투너는 어떤 대학이며 특징은 무엇인지?

1946년 레투너(LeTourneau) 씨에 의해 설립된 사립대학으로, 2006년이 설립 60주년이었다. 레투너 씨는 2차대전 당시 군수물자 수송과 유전개발 등으로 돈을 벌었다. 레투너 씨는 발명가 벨 다음으로 특허를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비록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천재적인 인물로 신앙심도 아주 깊은 분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롱뷰에 있던 전쟁 부상자 병원이 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터를 증여받아 레투너 대학을 세웠는데,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엔지니어를 꿈꾸는 학생을 받아들이는 기독교 사립대로 발전시켜왔다.

선교를 위한 비행기 관련 공학이 발전되어 있고, 비행기 조종사 양성 등으로 항공비행학과에 가장 많은 학생이 다니는 대학이다. 재학생 4,000여명의 종합대지만 학부생만 양성하고 있다. 엔지니어는 대개 학부 졸업 후 취업을 원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전문적 양성 사립대로서, 학비는 비싼 편인데 미국 백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부모가 레투너 출신이면 ㄱ,자녀도 반드시 레투너에 입학시킬 정도로 인기와 인정을 받고 있다. 타주에서 50%, 텍사스에서 50% 정도로 학생이 입학하고 있다

▼ 신앙을 우선시 하는 대학인 것 같은데.

수업 시작 전 5분간 경건의 시간을 반드시 갖게 하고 채플에도 꼭 참석해야 한다. 학생이든 교수든 학문적인 면만 보는 게 아니라 신앙을 보고서 입학시키고 채용한다. 한인학생도 몇명 있는데 대부분 선교사 자녀들이다. 또한 한국의 한동대와 자매결연되어 있어서 그곳에서 교환학생이 6명 와 있다. 김장환 목사 장학금이 있어서 한인학생은 모두 1년에 4천불의 장학금을 받게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수적이면서도 경건한 분위기에서 공부하기 때문에 부모들이 신뢰하고 자녀들을 맡긴다.

▼ 개인적으로 어떻게 레투너에 임용되었는지.

한국 대구대에서 정보통신학과(89학번)를 졸업하자마자 헌츠빌의 앨라바마대로 유학을 왔다. 거기서 전자공학으로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2003년 가을부터 레투너에서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앨라바마에서 박사 과정을 하던 중 TA로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영어도 부족하고 또 경험이 없어서 힘들었지만 지도교수가 많이 도와주어서 강의를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는 공부 후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미국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또 좋은 반응도 있어서 미국에서 좀 더 강의하는 일을 하길 원하게 되었다. 그 때 레투너대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내 강의를 듣고 만족한 레투너에서 전격적으로 나를 임용한 것이다.

▼ 미국 대학에서의 교수 경험이 준 소감은?

주립대에서 8년 공부한 것보다 이곳 사립대에서 4년 강의하는 동안 더 많이 공부한 것 같다. 사립대에 부모들이 바라는 바가 아주 많다. 또한 공학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해 알고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더 연구하고 더 공부하며, 새로운 것을 알아서 가르쳐야 그만큼 인정받고 제대로 교수의 일을 한다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사립대라서 그런지 졸업생들의 input도 많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있으면 와서 알려줄 정도다. 또한 강의를 통해 학생들을 지도하는 수준이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공부만 해서도 안된다. 그만큼 학생들과의 교감도 필요하고, 또 그들의 평가도 받아야 한다. 나 역시 동양인 교수지만 미국 교수에 뒤쳐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또 그렇게 인정을 받아오고 있어서 감사하다.

▼ 신앙적인 면에서도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헌츠빌에 있을 때 그곳 한인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며 신앙을 키워왔다. 롱뷰에서는 한인교회는 없지만,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고 또 한인학생들을 돌보는 일도 하고 있다. 교수로서 의무적으로 학생 20여명의 어드바이저가 되어야 한다. 한 학기에 그들을 3번 이상 만나 상담을 하면서 도와준다.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학문적으로 멘토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들에게 한국 문화나 인물 등에 대해 알려주고 한국인의 신앙심과 교육열에 대해 전해주기도 한다. 모교인 대구대의 대학원생 5명의 논문지도 교수 역할도 하고 있고, 여기 교환학생들에게 식사도 대접하는 일 등, 바쁘게 지낸다.

▼ 교수로서 추구하는 바가 있다면.

일단 여기서 강의와 연구를 통해 실용적인 실력을 더 갖춘 뒤 언젠가 한국에서 후학 양성 및 대학 발전에 공헌할 수 있길 기대한다. 소망이 두가지 있는데, 10살인 아들(로빈)과 8살인 딸(제니)가 한국어를 잘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과, 레투너에서 대학 경영에 대해서도 익혀서 후에 한국에서 기회가 된다면 CEO형 총장제를 구현해 보는 것이다.
김 교수는 대학 2년 후배인 권민정 씨(미술 전공)와 결혼했다. 유학 초기에 김 교수는 공부에 열중해 급성폐렴에 걸려 병원에 격리 입원되어 부인도 면회가 금지될 정도로 죽을뻔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각자의 방법을 터득해, 건강하게 장기적으로 학문의 길을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부지런하고 젊고 야심에 찬, 본이 될만한 자랑스런 한인 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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