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언론사, 사명감의 무게에 오히려 더 잘돼

2018 중간선거는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의 ‘승리’로 끝났다. 이번 선거에서 참패하면 2년 뒤 재선 실패는 물론 탄핵 가능성까지 거론되던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이겼다’고 말한다. 하원 몇석을 빼면 상원과 주요 요직에서 공화당이 수성해냈으니 맞는 말이다.

물론 민주당의 ‘블루 물결’이 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민주당도 승리한 것처럼 말하지만, 대체적으로 ‘거센 물결’이라기보다 ‘잔 물결’ 정도였다는 평이다.

이런 분위기에 취해서였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후 가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CNN 기자와 붙었다. CNN의 백악관 수석 출입 기자가 난민 수용 및 러시아 스캔들에 대해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충분하니 마이크 놓고 자리에 앉아라”고 언성을 높였다.

기자로서는 질문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하다. 그게 그의 일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마이크를 뺏으려 다가온 백악관 여성 인턴의 손길을 밀치면서 버텼다. 트럼프는 더 화가 나서 “너는 무례하고 끔찍한 사람이다. CNN에서 일해서도 안되는 인물이다”고 막말을 추가했다.

더 이상 질문을 못하고 마이크를 넘겨줬는데도 트럼프는 화를 못참았다. “CNN이 많이 하는, 가짜뉴스를 보도하면 당신은 국민의 적이 된다”고 거듭 공격을 퍼부었다. 졸지에 CNN은 가짜뉴스 언론사, 해당 기자는 끔찍한 ‘국민의 적’이 된 것이다.

백악관은 기자회견 후 해당 기자의 백악관 출입을 정지시켰다. 뒤끝 작렬이다. 이유는 그 기자가 백악관 인턴 여성에게 신체 접촉을 가한 못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마이크를 뺏기지 않으려다 팔이 잠깐 닿은 모양인데 이를 마치 ‘성희롱’ 정도로 언급했다. 직무를 수행하려 한 젊은 여성에게 손대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식으로. 기자로서 자신의 임무를 다하려던 노력 중에 생긴 해프닝을 성적인 접촉이라는 과장된 표현으로 몰고가는 건, 참 치졸하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공격성과 막말은 익히 알려져 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뉴욕 타임스를 맹공격한 사건은 유명하다. “나에 대해 끔찍하고 매우 부정확한 보도를 하던 뉴욕 타임스가 이제 수천명의 독자를 잃고 망하게 생겼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전에도 자신에 대한 기사를 쓰면 “망한 뉴욕 타임스가 소설을 쓰고 있다. 타임스 취재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비난했던 트럼프였다.

솔직히 망하길 간절히 바랬을 것이다. 누구라 한들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언론사가 흥하길 바라겠는가.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망하는 대신 더 흥했다. 당시 뉴욕 타임스는 “지면과 디지털 분야에서 새 독자들이 평소보다 4배 늘었다”며 트럼프를 약올렸다.

대통령이 망하길 바란다고 망할 언론사들이 아니다. 기껏 백악관 출입을 금지하는 보복을 한다한들 그건 해당 언론사를 더 유명하게 해주는 꼴이다. 실제로 트럼프의 취재 금지 갑질을 놓고 백악관 출입기자단이 성명을 내 “자신과 적대 관계에 있는 언론의 역할도 존중하라”는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 생각을 한다. 뉴욕 타임스처럼 망하길 바라는 소리라도 듣는 언론사면 그만한 무게감을 가진 것으로 여겨져 오히려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 지역 이민사회에서 태동한 뉴스코리아가 11월 11일로 창간 18주년을 맞게 되면서 갖는 생각이다. 있든 없든 별 존재감이 없는 것보다 백번 낫다는 그런 생각이다.

사실 망하길 바란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때로 망하게 하려고 다른 언론사를 한다는 이들의 소리도 들었다. 한정된 커뮤니티 공간, 그 제한된 ‘파이’를 놓고 경쟁하다 보니 새로운 먹이를 찾기보다 기존의 상대편이 갖고 있는 먹이를 빼앗아오는게 더 쉬워져 버린 지역 언론계를 탓할 수만은 없긴 하다.

그 ‘먹이 싸움’의 정글에서 18년을 뒤쳐지지 않고 앞장서 달려온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한번도 망한 적이 없이, 모자란 적이 없이 지금까지 운영된 것도 자부심이다. 물론 믿어주고 밀어주고 함께 달려주신 이들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걸 절대 잊지 않는다.

그 분들의 기대와 시선, 그리고 질책은 언제나 우리 에너지였고 소명이었다. 어차피 뉴스코리아는 사랑하는 지역 한인들의 참된 목소리만 듣고 달리기로 셋업된 채 출발했다. 그래서 언제나 당당하고 또 그만큼 항상 위태하다. 그런 말도 있잖은가.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언제 떨어질 지 모르는 천장의 칼 아래서 위기와 불안 가운데 누리는 게 최고 권좌라는 말을. 창간 18주년의 왕관이 칼과 함께 도래해 더 정신 바짝 차리게 된다.

<뉴스코리아 편집국장 |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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