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천년

오랜만에 가을 햇살이 유난히 고운 날 뒤뜰에 나가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는다.
나는 행복해지는 법을 안다. 재미있고 맛깔스러운 전라도라는 자존심의 뼈대를 세운 <전라도 천년>이란 책 한권으로 온갖 번잡함에서 잠시 놓여나는 일이다.
무화과 나뭇잎이 누렇게 가을바람도 없는데 내 앞에 슬며시 떨어진다. 순간, 인생은 곧 막을 내릴 무대로 여기라며 암시를 주는 저 낙엽 한 장, 그래, 책을 읽고 주어진 시간에 기쁨과 열정 그런 마음으로 살며 사랑하며 사는 것처럼 살다 무대에 막이 내리며 “좋은 책 많이 읽고 바보처럼 살다 가노라”고 하자. 가을 햇살과 버무리며 읽는 책은 어느 페이지 쯤 가면 책 자체를 사랑하는 수준을 넘어 책과 진실로 하나 될 수 있다. <전라도 천년> 책이 그렇다.

저자 김화성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의 작가이다. 기자시절 한국 편집 기자 대상, 대학 때는 대학 문학상을 받아 문청 시절을 지나온 그만의 독특한 글에 신선이 걸렸다고 하자. <책에 취해 놀다>와 음식인문학 <꽃 밥>까지 읽게 되었다.
김화성의 문장은 낄낄 웃음이 나오고 허튼 소리 같아도 깊은 곳에서 글이 익어 나온다. 가슴 아릿하고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환장하게 재미있는 <전라도 천년> 비사.
2018년 마지막으로 이 책을 올려야 할 이유가 있다. 전라도라는 말이 최초로 생긴 것이 1018년 고려 현종 9년에 호남의 큰 고을 전주와 나주의 첫 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경상도는 1314년에 생겨 무려 296년이 전라도가 앞선 것이다, “오매 징허고 오지게 살았네.” 천년이란 세월이 저무는 12월의 책이다 고민이다. 책 한권에 담긴 한과 질곡 멋과 흥의 전라도를 다 담을 수 없으니 그냥, 독자들에게 이 책을 한권씩 팍 줘버려?

파트 1. ‘전라도의 탄생’
전주와 나주 두 곳 특징. 전주는 조선왕조 본향잉게 전주 양반네들은 ‘솔찬히 아그똥한’ 양반네들 고집이 들어있지만 은근하고 넉넉하다.
전주는 왕의 도시라면 나주는 선비의 고을이다. 차돌 같고 옹골찬 ‘선비의 기개’ 나주 유림과 양반들은 자존심 강직하고 옹고집이 유별나다. 조선 3대 소반 통영 해주 그중 나주의 소반은 고졸한 아름다움이 야무지고 아금박스러운 나주사람들의 삶처럼 전라도의 품격을 나주소반 하나만으로도 말해준다.

파트 2. ‘타오르는 들불
정여립과 전봉준, 변방에서 ‘누구든 섬기며 임금 아닌가.’ 조선에 천둥소리기 천지를 진동한다. 한때 스승이었던 율곡도 거침없이 비판하고 선조 임금 앞에서도 고개를 똑바로 들고 말하였던 정여립, 율곡은 그를 천재라 하였다. 그는 누구나 능력이 있으면 임금이 될 수 있다고 한 말은 조선시대의 천둥소리였다. 조선왕조 최초의 공화주의자다. 영국의 공화주의자 크롬웰보다 50여년이나 앞선 사람이 정여립이다.
전라도 유배지에서 피워낸 다산 정약용과 자산어보를 남긴 정약전 형제의 유배지인 전라도 척박한 땅에 인문학의 씨앗을 뿌렸다.
녹두장군 전봉준, 1894년 공주 우금고개의 패배는 조선관군이 일본 관군을 끌어 들여 기관총이 화승총을 제압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과 을사조약으로 나라의 근간의 위험의 시작이었다. 후천개벽을 꿈꾸다 형장으로 끌려 갈 때도 그의 눈빛은 형형했다.

파트 3. <거시기 머시기 아리랑>
가장 전라도다운 언어의 밀당과 재기 넘치는 남도의 일상 언어가 판소리 타령조다.
‘긍게 말이여-’와 ‘큼메마시!’의 그 미묘한 밀당, “아이구 폭폭해 죽겠네” 썩을 오살할 놈의 거시기 타령, 계백장군도 부하덜 한티 ‘우리의 전략적인 거시기는 머시기헐 때까지 갑옷을 거시기 헌다.” 부하들도 알아듣는다. 죽을 때까지 갑옷을 벗지 말라는 소리여.
인터넷 덧글을 보면 내편이 아닐 때는 가차 없이 창과 비수 같은 말이 상대방의 가슴을 콕콕 찌르며 그 말들이 화살이 되어 강호를 활개치고 다닌다. 거시기는 속창아리가 없다. 낙지같이 흐물흐물한 뼈다구 없는 연체동물이며 머시기 거시기는 맴과 맴을 이어주는 침묵의 소리라 김화성은 말한다.

파트 4. 전라도에서 놀다.
김화성은 노는 것을 좋아한다. 책에 취해 놀고 전라도에서 놀다. 4장에서 책의 클라이맥스가 있다. 노는 것도 고품격으로 논다. 자, 들어가 보드라고 뭔 재미난 놀이인지?
“개꼬리 붓으로 막사발 같은 글씨 ‘창암 이삼만의 들꽃 인생” 추사와 비교도 안 되는 신분으로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평생을 개꼬리 붓으로 글을 써온 그는 해남 대흥사에 추사와 상암의 글씨가 나란히 현판으로 걸려있다.
소박한 글체와 그의 삶은 전라도 선비다운 이름 없는 들꽃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말간 슬픔의 질박한 깨끔쟁이 ‘판소리 인생’ 동리 신효재”(1812-1884). 그는 고창 향리 아전 출신의 중인계급으로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근검절약으로 재산을 모아 전부를 판소리에 소진했다.
그는 마흔에 접어들어 판소리에 빠져들어 “토별가”를 정리하고 판소리 여섯 마당을 정리 작업을 42살에 마무리 지었다. 귀명창의 이야기 한 구절 빌려 쓰자면 ’소리는 소리꾼 목이 숫불처럼 발알갛게 달아올랐을 때 들어야 제 맛이다. 긍께 인생사 살면 얼매나 산다고 그 많은 재산을 소리판에 탈탈 털어 넣으며 살다간 신효재 선생이야 말로 사무사(思無邪) 사사무애(事事無碍)가 아니리오.
“나라가 망했는데 어찌 죽는 선비하나 없는가! 매천 황현!” 전라도 구례 땅은 예를 행하는 곳입니다. 매천 황현 선생이 예입니다. 을사조약으로 나라가 기울자 선비라면 나라를 위해 죽는 자가 없다면 위로는 하늘의 병이와 아래로는 평소 읽은 책의 의미를 져버릴 수가 없다. 너희들은 너무 슬퍼하지 말라며 자결을 했다.
책을 읽은 선비는 앵무새처럼 입으로만 떠들 수 있느냐는 준엄한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겨본다.
‘찰지고 옴팡진 인생 전라도 으뜸 한량 한 창기’ 작가 김화성의 끈질긴 전라도 타령이 신명나게 익어간다.
“쩌그 전라도 아랫녘 벌교 땅 한창기(1936-1997) 전라도에는 예날부터 놀기 좋아하는 넘들이 수두륵박적이지만 그 화상만큼… 중략… 놀다 간 넘은 없어야.
작가의 능청과 익살로 투박한 남도 사투리를 읽다 배꼽이 빠지는지도 모른다.
그는 서울법대를 나온 먹물 중에 먹물이다. 출세보다 돈 안 되는 한글 한복 한지 한옥 한식 판소리 옹기 찻그릇 조선 반상기 등에 관심 있는 한창기는 61년을 이승에서 놀다갔다. 여자보다 재미있는 게 너무 많다.
하지만 후사는 1남 1녀를 두었다.
뭔 소리여, 긍께 그게 ”뿌랑구 짚은 낭구“ “시암이 짚은 물” 그만하며 되어 부럿제,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창간 발행인으로 한국 문화의 전통을 담은 월간잡지 그 책을 끼고 다닌 나의 젊은 날의 우상 한창기 선생으로 이 책은 더욱 빛난다.

파트 5 ‘오백년 한 지붕 두 가족 전라도와 제주’로 끝을 맺는다.
제주는 변방이다, 조선시대 제주는 전라관찰사 아래 제주 목사를 두어 전라도와 하나를 이루고 지냈다. 화가 이중섭이 제주에서 동란 전후에 살았다. 조선의 명필 추사 김정희가 8년의 유배에서 추사체에 기름을 빼다.
전라도 한과 흥과 멋의 땅으로 2018년 책사랑 칼럼 독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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