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 평전

1919년에 일어난 삼일 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올해로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겨레 월드 아리랑>주체로 미주 한인 공동체 시카고, 뉴욕 사우스케롤라이나 그린빌, 여러 곳에서 삼일 만세 행사를 한다고 한다. 고국을 떠나서까지 겨례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려는 이민 1세대들의 지극한 정성으로 민족혼을 일깨우는 행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100년 전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만세를 불렀다. 100년이 지난 오늘은 조국 독립을 위해 투혼을 바친 그분들을 1.5세 혹 2세들에게 알리고 미래의 하나 되는 조국통일로 가는 큰 꿈을 키우기 위해 만세를 부른다. <아리랑> <우리의 소원> <고향의 봄>을 노래하며 태극기와 무궁화가 그려진 풍선을 들고 만세를 이어간다고 한다. 행사 시작은 독립선언문 낭독으로 상의는 흰색 하의는 검정 옷으로 행사에 동참하시라는 광고. 의식 있는 젊은 엄마들이 한국문화원을 열었고 한글학교와 매년 세월호 행사도 이어가는 그린빌 한인들의 행동하는 열정과 나라 사랑에 감사한 마음 담아 삼일만세 정신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일을 알린다.

남아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1918-2013) 그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흑인 인권과 인간의 평등을 위해 무려 27년간 감옥에서 살아남았다. 36년 일본의 압제에서 항일 운동을 하다 잡혀들어 가면 오래 살려 두지 않았다. 혹독한 고문과 빠른 재판으로 사형시켰다. 만델라의 투쟁과 선조들의 독립투혼의 열망을 함께 고찰 하고자 한다. 삼일 만세운동이야말로 가장 정통적인 보수와 진보의 기치가 담긴 민족적 염원을 담아낸 역사적 사실이라 할 수 있다. 독립운동사에 여성들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의 훈장을 받은 유관순은 삼일 만세운동에 가담하여 서대문 형무소에서 꽃다운 18살에 순국했다. 자유와 평화 인권이란 말 앞에 항상 구체적인 자아와 그것이 수행하는 행위 사이의 관계가 함축되어있다. 만델라의 27년의 옥중 투쟁과 우리 선조들의 독립 운동은 그들의 인격 전체에서 우러나와 그것을 표현하였으므로 우리는 그로 인해 지금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다.

만델라는 아프리카 트란스케이의 한 촌락인 움베조를 통치하는 템 부족 추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만델라의 아버지가 사소한 사건에 연류 되어 백인에 도전한다, 영국왕의 법이 아니라 템 부족의 관습에 따라던 것이다. 만델라의 가족은 그 사건으로 그 시대의 부유한 귀족이지만 한 순간에 지위와 재산을 잃어버린다. 만델라는 템 부족의 섭정이 공신의 아들을 보호함으로 자신의 궁전으로 데려와서 교육을 받게 된다. 마침내 그는 포트헤어 대학에 입학하여 법률공부를 하다 학생운동에 참여하여 퇴학당한다. 정략결혼을 피해 요하네스버그로 입성하여 독학으로 법률공부를 한다, 비백인으로 최초의 변호사가 되어 아파르트헤이트를 반대하는 본격적인 흑인 인권운동을 시작한다. 아프리카인의 대대적 인권말살과 그에 대한 만델라의 저항은 ‘국민의 창’이란 조직을 만들어 항거한다. 반역죄로 검거되어 프리토리아형무소에 이감된다. 1963년 에스퀴티니섬 로벤아일렌드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월터 시슬루, 고반 옴베, 키레이몬드 음흘라바 등 아프리카 국민회의의 최고 사령부가 감옥에서 완성되었다. 27년 만에 세계의 조명을 받으며 출감한다.

만델라 평전을 쓴 쟈크 랑은 프랑스 문화 교육부 장관을 12년이나 연임한 문화적 다원성을 중시한 그의 열린 시각으로 이 평전을 희랍신화로 비유한다. 평전은 고대 희랍신화의 작품 제1막 안티고네로 시작해 2막 스파루타쿠스, 3막 프로메데우스, 4막 프로스페로, 5막 넬슨 왕으로 끝난다. 1막에서 “만델라는 인종차별주의라는 크레욘의 음흉한 얼굴에 맞서는 안테고네이다. 크레욘은 만델라와 그의 동족에게 인권을 빼앗아간 인물이다. 평전은 이렇게 전개 된다”

‘국민의 창’이라는 아름은 가느다란 투창으로 아프리카인들이 백인의 총에 맞선 용기를 지니고 있다는 뜻을 지닌 창설된 군대 조직이다. 아프리카는 수세기에 걸친 개신교 앵글로색션의 자유주의자 정신세계 속에서 무장폭력에의 의존은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지만 만델라는 무장투쟁을 선택한다. 일제 압제 하에 무장독립운동으로 산화한 젊은 그들의 용기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만델라는 인간이 어떤 고난에 처했을 때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야하는 가를 가르쳐 준다. 만델라는 투쟁의 긴 세월을 아프리카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투쟁의 바탕은 사랑이다. 1990년 넬슨 만델라의 석방연설과 1993년 노벨 평화상 연설은 세기적 명연설로 지금도 신화처럼 남아있다.

정치인으로서의 고결함은 방법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태도 속에 존재했다. 지극히 미묘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책략을 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가장 효과적인 대중 앞에서 말하는 능란함을 보여주었다. 수감될 때에도 평정심과 복수심을 갖지 않았다. 가증스러운 아파르트헤이트의 어떤 회유에도 ‘작은 문으로 다시 들어오라’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만델라는 예의 그 명석함으로 그 함정을 간파했다. 아프리카는 1990년 대 이전까지도 영국의 통치하에 있어 어둠의 횃불을 밝힌 만델라, 드디어 석방, 1994년 일인 1표의 투표로 만델라는 남아프리카의 백인 요람이었던 프리토리아에서 탈 인종주의 민주국가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만델라는 1918년에 태어났다. 같은 해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조선 동경유학생으로 구성된 그들은 2,8 독립선언문을 낭독, 다음해 1919년 삼일 만세운동과 독립선언문을 선포한다. 만델라의 출생과 같은 시기에 세계사는 격동의 시기로 휘몰아친다. 한 국가의 존망은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비인간적인 벽을 무너트리기 위해 투쟁했던 넬슨 만델라와 이 땅의 존엄한 독립 유공자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자유와 평등으로 살아가는 아프리카 신생 공화국창건에 목숨 바친 사람들과 조선의 삼일 만세운동으로 총칼에 맞선 선조들을 위해 삼가 묵념을 바친다. 20세기 영웅 따뜻하고 도발적인 남자, 책을 읽는 동안 만델라의 연인처럼 나는 폴 고갱의 그림 속 타이티의 여인처럼 풍만한 가슴의 여자가 되어 만델라와 목하 열애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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