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문신단

슬초가 자라 십 대가 되며 아이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신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 같았으면 펄쩍 뛸 주제이지만, 적어도 미국에서는 문신이 각자의 자유로운 개성 표현의 하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니까요.
요즘 한국에서도 문신이 다양한 자기표현 혹은 패션의 도구로 사용돼 가고 있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슬초맘의 세대는 문신을 보고 그다지 달가와하는 세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슬초맘 나이 또래의 사람들은 예쁜 문신이라는 것을 보고 자랄 수 있었던 세대가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만 해도 ‘문신’하면 떠오르는 그림은 주로 ‘용’, ‘도끼’, 뭐 이런 것들이니까요. 함께 연상되는 단어들도 “깍두기”, “깡패”, “야쿠자” 등 죄다 안 좋은 것들 같습니다. 일단 몸에 문신이 있는 사람을 보면 도망을 가는 것이 최선이었으니까요.
슬초가 네 다섯 살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스틴에서 엘에이를 들러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엘에이에서 마침 온 몸에 용 문신을 하고 셔츠를 풀어재친 무섭게 생긴 동양인 아저씨가 저와 슬초가 앉는 좌석에 함께 앉게 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좁아터진 이코노미 좌석에서 그 용 문신 아저씨께서는 팔과 다리를 최대한 쩌억 벌리고 앉은 쩍벌 자세를 시전하고 계시더군요.
최대한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조심 자리에 앉는데, 바로 그때 그렇게 무시무시한 문신을 처음 본 슬초가 놀란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을 거는 것입니다. “엄마, 엄마, dragon! 아저씨 body에 big dragon!!”
슬초맘이 태어나서 그렇게 빨리 아이 입을 틀어막아 본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등에 식은땀이 흐르던 찰나, 그 드래곤 아저씨가 갑자기 슬초맘을 찍 째려보시더니, “한국 사람이예요?”라고 물어봅니다. 슬초 입을 틀어막던 슬초맘, 자세를 급히 바꾸고 “아…… 네……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 분이세요?”라고 최대한 공손하게 대화를 이어 나갑니다. 그 드래곤 아저씨께서는 엘에이에 시끄러운 일이 있어서 출장을 와서 해결을 하고 다시 본사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대답을 해 주시더군요. (암요…… 잘 해결하셨겠지요……)
여하튼 승무원에게도 반말을 하시며 12시간 동안 쩍벌 다리 자세를 시전하시던 그 불편한 드래곤 아저씨 덕분에 12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잠 한숨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용 문신에 얽힌 불편한 기억 중의 하나지요.
하지만 문신을 자유로운 개성 표현으로 여기는 문화권인 미국에서는 정말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슬초맘 주변의 미국인 사역자들 중 몸에 문신이 있는 이들도 많고, 직장 동료들도 성별이나 교육 수준에 구애를 받지 않고 문신을 즐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상대방의 문신을 보게 되면 예쁘다고 칭찬을 하거나, 그 문신의 뜻이나 동기, 그에 얽혀있는 이야기 등을 스스럼없이 나누고는 하니까요. 목걸이나 귀걸이, 반지 같은 악세사리조차 하지 않는 슬초맘으로서는 몸에 구멍을 뚫거나, 혹은 피부에 뭔가를 영구적으로 새겨 넣으면서까지 나 스스로의 개성을 나타내거나 삶의 모토를 몸에 새기고 싶지는 않지만, 미국 문화권에서 자라난 슬초는 또 다른 것 같습니다.
물론 슬초맘 역시도 슬초가 건강하게 자신의 개성을 표현해 나가는 것을 지지하기 때문에, 문신 그 자체로는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가 그 문신으로 인해 사람들 간에 불필요한 장벽이나 거리감을 만들게 되거나, 혹은 가능한 기회를 놓치게 되거나, 또는 삶의 한순간에 그 문신을 새긴 것을 후회하게 되거나 할 것이 조심스러울 뿐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하고 싶은 일은 다 해 보라!”고 가르치는 슬초맘이지만, 슬초가 문신에 대해서만은 보다 신중하게 생각하도록 “네가 정 문신을 해야겠다면 엄마인 나도 같은 부위에 같은 문신을 하마!”라고 농담 삼아 말을 했던 것이 한 6개월 전의 이야기였습니다.
꼭 한 번 해 보고 싶다면 해 보는 것이지만, 문신의 디자인이나 내용, 그리고 위치 등에 있어서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신중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그리고 그땐 슬초도 분명, “아, 그럼 난 안 할래요!”라며 발을 뺐었고 말이지요.
그런데 요 녀석이 요즘 다시 꼭 문신을 한 번 해 보고 싶은가 봅니다. 아르바이트로 의류와 사진 모델 일을 하는 중이라, 자신의 분위기에 맞는 멋진 문신을 하고 있는 미국 친구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 영향도 있는 것 같고 말이지요. 최근 슬초 녀석이 요즘 엄마랑 같이 하기엔 어떤 문신이 좋을까하며 유명한 문신 디자이너들을 알아보고 있는 것이 슬초맘의 레이다에 잡혔습니다. 미술에도 소질이 있어 나름 오랫동안 미술 공부도 해 왔던 녀석이라, ‘가족’이라는 주제로 직접 문신 디자인도 시작했더군요. 조만간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문신 디자인을 가지고, “엄마! 엄마랑 같이 문신하려고 내가 직접 디자인했는데 같이 문신하러가자!”고 할 기세입니다.
부모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돼!”라고 했다고, 친절히 흙을 가져와 먼저 눈에 넣어주는 분위기랄까요. 정말 이러다 달라스에 조만간 모녀 문신단이 탄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슬초의 문신 로망. 7년 전 엄마로부터 발행 받았으나 막상 써야 할 가장 적절한 시기를 고민하느라 좀처럼 사용되지 않고 있는 <앗, 나의 실수> 쿠폰처럼 신중히 고민만 하다 지나가는 주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회자 사모이자 중 고등부 전도사인 슬초맘이 정녕 조만간 팔뚝에 꽃 문신을 하고 나타나게 되는 대사태가 발생할테니 말이지요. 미국 땅에서의 슬초 육아 17년 차, 육아와 자녀 교육은 정녕 다이나믹함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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