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애의 행복을 나누는 수다

행운목이 준 선물

미술학원에 들어선 순간 강하고 진한 향이 코를 찔렀다.
향수를 많이 뿌린 사람이 지나갔겠거니 생각했다. 향수 알레르기가 심한 편이어서 독한 향수 냄새를 제대로 맡으면 종일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고 눈알이 빠지는 것 같다. 게다가 콧물에 재채기까지 시작하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서 그런 향이 훅 치고 들어올 때면 숨을 참거나 자리를 피하곤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곳은 닫힌 공간이다. 특히 교회에서 맡게 되는 향수 냄새는 최악이다. 미국 사람들은 향수를 좋아하는데, 저마다 쓰는 향이 달라서 교인 수대로 합쳐 놓으면 내겐 독약이나 다름없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처음엔 은혜스럽지 못하게 교회만 갔다 오면 몸이 아팠다. 짧으면 하루, 길면 이삼일을 시달리니 일 년 열두 달 알레르기약을 먹었고, 예배는 사람이 적은 3층까지 올라가 드려야 했다.

더 괴로운 건 비행기를 탈 때다. 자리를 옮겨 다닐 수도 없고 고스란히 정해진 자리에 앉아 냄새를 맡으며 견뎌야 하는데 비행시간이 길어지면 속이 불편해 토하기까지 하니 보통 민망한 게 아니었다.
한 번은 옆자리에 인도 여자가 앉았다. 얼마나 향수 냄새가 지독하던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승무원에게 사정을 말했더니 자리를 바꿔주었다.
자기가 좋아서 뿌린 향수가 싫다는데 기분 좋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속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외국 사람은 오히려 미안해하며 도와주려 애쓴다.
커피빈 냄새를 맡으면 도움이 된다 해서 요즘은 한주먹씩 들고 비행기를 타는데 괜찮은 것 같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나를 만나러 올 때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 외국인 친구도 마찬가지다. 연말이 되면 향수 선물이 들어온다. 마음은 고마운데 쓸 수가 없으니 향수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시 선물하거나 남편 회사 화장실 방향제로 사용한다.
우리 집과 차엔 방향제도 냄새 강한 로션조차도 없다. 천연이 아닌 냄새는 모두 나를 아프게 한다.

부모 대기실에 앉아 일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오가는 사람도 없었는데 향기가 가시질 않았다. 복도에만 나가면 향기가 더 독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건 향수 냄새가 아니라 행운목에 꽃이 피어 우리를 부르는 향기라는 것을.
십 년째 보아 온 행운목이 드디어 꽃을 피워냈다. 한 그루가 아니라 창가 쪽에 있던 모든 나무에 꽃이 피어있었다. 시들어 누렇게 뜬 잎을 몇 번 따 준 녀석들이라 그런지 반갑고 기특했다.
행운목에 핀 꽃을 처음 보았다. 바빠서 화분 갈이도 못 해주고 돌보지도 못했는데 꽃이 피었다며 기뻐하던 주인장은 목소리에 기쁨이 가득했다.
우리는 코를 들이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라일락 향 비슷한데 좀 더 강했다. 하늘이 내린 향기는 독해도 아프지 않았다.

행운목이라는 이름은 꽃 피는 걸 보는 게 어려워 붙여졌다는 말도 있고, 꽃이 피면 3년 동안 행운이 온다는 뜻에서 지어졌다는 말도 있는데 어떤 게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행운이 온다는 말이 정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 밤 행운목 꽃을 함께 본 우리가 모두 행운의 주인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장의 사업을 번창하고, 아픈 사람은 건강해지고, 열심히 그림 그리는 우리 아이들은 모두 자기가 원하는 학교에 좋은 조건으로 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다.
인위적으로 만든 향기가 아니라 사람 됨됨이에서 나오는 향기다. 생각이 바르고 마음이 고운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는 탁한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애써 가꾸지 않아도 아름답고,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좋은 향이 나는 사람, 명품을 휘감지 않아도 사람 자체가 명품인, 그런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싸움은 그치고 행운목 꽃향기처럼 좋은 향기만 가득한 세상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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