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칼럼

말통의 힘

레제나하우스 대표 조상연 목사님이 쓰신 비유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밥을 담으면 밥통, 술을 담으면 술통, 말씀을 담으면 말통이라구요. 우리는 밥통이 될 수도 있고, 술통이 될 수도 있고, 말통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저는 올해 말통이 되고 싶어 ‘90일 통독방’을 열심히 세팅하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말씀을 읽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이신 그분이 우리의 삶 속에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죽고 예수로 살자”라는 구호를 외치지만 사실 그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살아낼 힘이 우리에게 없으니까요.
살아낼 힘이 어디서 오는지 조상연 목사님은 성경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신명기 28장에는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면 된다’고 쓰여있다. 그런데 순종이 잘 안된다. 순종은 로마서 1장 5절에 의하면 “the obedience that comes faith”라고 쓰여 있다. 순종은 믿음에서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기분 나빠한다. 순종이 안되면 믿음이 없는 것이 되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순종은 안 하면서 믿음 없다는 소리는 듣기 싫어했던 적이요. 그러나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오는 줄을 안 다음에는 말씀을 담는 말통을 키우는 일에 시간을 쏟았답니다.
지난해, 말통의 힘으로 승리했던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아주 사소한 것들에 불과합니다. 특별히 가정에서 일어났던 갈등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았던 경험은 가정의 회복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재해석되었죠. 믿음은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순종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말통의 힘이었습니다. 저는 말통의 힘으로 승리했던 일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큰아들이 4년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왔습니다. 고양이라면 그냥 싫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고양이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대학 3년 차가 되었을 때부터 저희 부부는 말씀을 읽으며 말통을 키우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 그동안 아이들에게 주었던 사랑이 복음적인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살고 있는 딸과 막내아들에게는 복음으로 다시 사랑하기 시작했지만 멀리 있는 큰아들에게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많이 미안해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그 큰 아들이 직장 때문에 같이 살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큰 아들을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아들이 고양이를 데려온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알았습니다. 큰 아들을 환영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양이부터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요.
하나님은 이때 말통의 힘을 쓰게 하셨습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었습니다. 막내는 고양이가 어딜 만져주면 좋아하는지 구글에 물어봤고, 남의 집에 갔을 때 강아지나 고양이가 있으면 의자 위로 재빨리 뛰어올라가던 딸도 노력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 역시 고양이를 안으면 느껴지는 뭉글뭉글함이 너무 싫었는데 아들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번쩍 들어 안았다는 거죠.
이것은 말통의 힘이 아니었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남편은 워낙 동물을 좋아해서 생리현상으로 인한 뒤처리들을 담당해주었죠.
우린 그렇게 큰아들을 환영했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요즘 우리는 고양이에게 서로 밥을 주고 싶어 한답니다.
“맘마” 하고 말하면 알아차리고 밥 달라고 울어대는 모습이 너무 이뻐서죠. 그렇게 고양이랑 친해지면서 큰 아들과도 친해지고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배웠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 방식으로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상대방의 방식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신 것처럼요. 그러나 그 사랑은 말통의 힘이 아니면 할 수가 없습니다.
말통의 힘은 믿음입니다.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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