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칼럼

“나는 죽고 예수로 살고 싶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에 이르면 왜 이렇게 숙연해지는 것일까요?
마지막이라는 말이 주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에는 예정된 마지막이 있습니다. 육체의 마지막은 죽음이고, 영혼의 마지막은 아들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이 되죠.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1서 5:11-12)

매년 12월을 맞게 하심은 그 마지막을 연습하도록 하신 배려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에게는 아들이 있나?”로 자신의 믿음을 시험할 수 있는 오늘이 감사합니다.

저희는 12월 첫 주에 예배당을 이전하고 첫 예배를 드렸어요. 우리가 소유한 건물은 아니지만 기도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가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가 되는 곳이었습니다.
당장 예배당이 필요했을 때 하나님이 인도해주신 곳에서 22개월을 예배드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은혜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네요. 그곳에서의 마지막 예배 때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당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장소의 새로움이 아니라 마음의 새로움을 경험했으면 좋겠다고요.
그 말이 뭔지 이전 후 첫 예배를 드리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장소가 주는 신선함에다가 새로 장만한 좋은 의자, 잘 정돈된 세팅, 게다가 분위기까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의자들은 점점 낡아질 것이고 분위기는 점점 익숙해져서 불편한 점들이 더 많이 눈에 띌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할 거냐는 말씀이시겠죠.
그러나 주님으로 인하여 날마다 마음이 새로워지면 내가 앉은 낡은 의자도 새롭고, 분위기도 날마다 새로워지는 법임을 진리 안에서 알게 하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목사님이 자주 도전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켜달라고 또는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달라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요.
변화되었으면 가장 좋겠는 사람이 하필 아내이고 남편이고, 또 가까운 성도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아내가 변하고 남편이 변하고 또 상황이 해결되면 과연 그게 복이 되겠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렇지 않다고요. 왜냐하면 정작 나는 하나도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그 말이 참 오래도록 울림 되었습니다. 남편도 나에게 잘해주고 자식들도 잘되고 어려운 상황도 해결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나 중심적”이라면 그것은 정말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다 그대로일지라도 내가 변하는 게 축복이겠다 싶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다시 해석되었습니다. 가끔씩 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습니다. 불편한 마음, 그게 바로 들켜진 나였습니다. 가끔씩 싫은 상황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싫은 마음, 그게 또 들켜진 나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안에 내가 얼마나 많은지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나는 개선의 여지도 없습니다. 변화될 가능성도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보내셔서 그 아들로 하여금 구원을 다 이루어 놓으시고 내게는 믿기만 하라고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읽을수록 주님은 점점 커지고 나는 점점 작아지는 이 신비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는 설명이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10월 회사 직원들과 시작한 말씀 통독방은 벌써62일차에 들어섰습니다. 로마네 방에서는 로마서를 읽는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믿어 순종하기” 위한 각자의 씨름도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엊그제 로마네 방 막내인 대학교 2학년생 유림이가 100독을 돌파하고 오늘 101독째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고 싶습니다. 내가 들키고 또 들켜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은혜,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닌 나를 위해 그 아들 보내주신 놀라운 사랑, 그 사랑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날을 기뻐하고 기뻐합니다. Joy!

“아들이 있는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1서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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