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아이 성적 때문에 불안하고 자신 없나요?

인간의 슬픔이 아무리 비통한 것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불안이라는 것에는 한계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크게 슬퍼하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 것을 알고 갖는데 반해, 불안은 우리에게 어쩌면 생길지도 모르는 것, 또는 생길 확률이 10% ~ 30%의 것까지도 모두 겁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내 노트북 앞장에 있는 프라니우스의 명언이다.
삶의 골목마다 도사리고 있는 이 불안이라는 초청하지 않은 손님을 우리는 무시하고 지나가야 하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어느새 악수를 청하고 친근한 미소까지 보내고 있는 스스로를 보게 된다. 불안의 반대는 뭘까? 믿음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저 멀리에 있는 걸 볼 수 있는 힘이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시작할 때 그 목표를 이뤘을 때 안게 될 결과물의 기쁨을 예측하고 멀리 바라보는 사람은 현재의 장애물에 대해 뛰어 넘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데 반대로 불안감을 갖고 시작하는 사람은 눈을 언제나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에만 고정시키고 있기에 근심이 항상 따라 다닌다.

2018년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보며 불안과 희망 사이를 오갈 12학년들이 생각났다. 내 아이들도 어얼리 지원 발표가 난 후에야 레귤러 지원 에세이를 시작했지만 그건 글을 잘 쓰는 아이들이었기에 가능한거지 그걸 따라 했다가는 낭패 볼 수 있다. 더구나 내 아이들은 게을러서도 많은 대학에 지원할 엄두를 못낸 케이스다. 두 딸들 다 8개 대학에 지원했었다.
12월 15일 어얼리 지원에서 유보(defer) 소식을 듣고 그 날 하루는 눈물바람하더니 그 다음날부터 하루에 한 대학씩 에세이를 써서 크리스마스 전에 지원을 끝내고 놀러 나갔던 기억이 있다. 막내는 그나마도 ED(어얼리 디시전) 지원에서 합격해 에세이 두 편(커몬 엡 에세이와 코넬 대학 에세이)만으로, 정말 편하게 대학에 갔다.
막내는 게을러서도 여러 대학 지원은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인데, 돌이켜보니 그게 ‘드림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던 ‘키’ 역할을 한 결과가 됐다. ‘모자람이 넘치는 것보다 낫다’고 욕심을 버리고 정말 가고자 하는 대학들을 선정해 최선을 다해 에세이나 지원서를 작성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데 도움이 됐던 것이다.
불안한 마음에 20개 이상 대학에 지원했다는 얘기를 가끔 듣는데 그건 무모한 일이라고 본다. 20개 대학 에세이를 써내려면 여름방학 쯤부터 준비하지 않는 한, 우리 아이들처럼 어얼리 결과를 보고 나서부터 시작한다면 완성도 높은 에세이를 써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정말 가고 싶은 대학, 갈 만한 대학, 혹시라도 모르니 안정권 대학 몇개 선정해 12개 정도로 축소해야 한다. 내 마음 같아서는 8개 정도의 대학을 준비하라고 하고 싶지만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으니 12개 대학까지 생각해 본 거다. 불안한 마음에 20개 대학까지 생각하는 건 이해되지만 에세이에서 빈틈이 생길 게 뻔하다.

지난 몇 년간 12학년 학생들의 명문 대학 지원 과정을 지켜보며 그 결과에 대해 백퍼센트는 아니지만 상당히 높은 수치로 예측할 수 있었다. 일단 나는 그들의 학교 내신(AP 성적 포함)과 SAT(혹은 ACT)나 SAT 서브젝트 테스트 성적을 먼저 봤고 그 다음 학생의 과외 활동이나 수상 경력, 그리고 마지막에 에세이를 본다.
수십명 학생들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여기서 생각과 다른 게 많았다. 대체로 여학생들의 에세이는 기대치 만큼이었는데 남학생들 중에서는 너무도 단순한 정신세계가 그대로 엿보이는 통에 진학상담하던 나도, 에세이를 봐주던 내 아이들도 난감해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경우 조금 손봐줄 수도 있고, 또 몇 번이고 주제를 바꿔 브레인스톰을 해준다 해도 그 단순한 정신세계 자체를 바꿔주기에는 시간이 없다는 거다. 그 단순함이 대학 입학 사정관들 눈에도 비쳐질 걸 알면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체로 이런 학생들은 부모가 하라는 대로 따랐던 모범생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이가 말도 안 듣고 자기주장대로 한다고 푸념하는 부모들을 만나면 똑똑한 아이일 확률이 높다고 위로를 해준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아이들 중에는 부모 말도 안 듣고 성실함도 보이지 않는 아이들도 있을 테니까.

이전에 대학 상담이나 학생 공부를 도와주면서 나는 우선적으로 학업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선호했었다. 그것이 기본적으로 돼있으면 나머지는 큰 어려움없이 도와줄 수 있어서였다. 그래서 결과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여유가 생겨서 더 어려운 상태, 공부에서도 아직 준비가 덜 된 아이들을 저학년 때부터 책임지고 공부시켜서 기본을 다져주는 일을 하기로 바꾸고 나니, 그런 대상들이 눈에 많이 띄고 또 많이 만나게 된다. 그룹 과외를 하던 때라면 이런 아이들을 맡게되면 불안하고 또 자신감도 덜했던 나였지만, 지금은 숱한 경험의 길을 걷고 나서인지, 어떻게 하면 어떤 결과를 빚는지 많은 노하우를 알아서인지 오히려 더 의욕과 자신감이 생긴다. 어려서부터 실력있는 아이로 키워보겠다는 ‘엄마’의 마음이 도전의식을 더해준다고나 할까.
이런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머리보다는 태도다. 명확한 목표와 끈기, 그리고 목표한 것을 해내고 싶어하는 열정과 성실을 갖고 시작하라고 권한다. 그런 아이들을 맡게 되면 불안감 대신 믿음과 자신감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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