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더'의 선물, 살아있는 민주주의 덕을 바라며
DATE 18-05-11 03:53
글쓴이 : 어드민      

난 주말 두개의 승부에 대해 취재하며 지켜봤다. 여자프로골프 LPGA 텍사스 클래식에서의 한인 선수들의 경기가 하나였고, 코펠 시의원 선거의 전영주 후보 당락이 또 하나였다. LPGA의 관심은 텍사스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대회였기에, 코펠 시의원 선거는 한인 첫 의원 탄생이 이뤄질지에 주목이 집중되고 있었다. 

텍사스 클래식은 박성현 선수가 우승했다. 원래 4일간 72홀 경기가 정석인데, 폭우로 하루 뺀 54홀 경기로 축소됐다가 다시 36홀 반절 경기로 줄여서 승자를 가렸다. 이런 파행적 경기가 선수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단지 목요일부터 시작되는 정식 라운드 전날인 수요일에 아마추어와 라운딩하는 프로암에서 만났던 한인 선수들이 이번 대회 1등을 비롯,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우연일 수 있다. 사실 프로암에서 라운딩 한번을 더해야 하는 게 선수로서는 부담되는지는 모른다. 김세영 선수도 수요일 점심을 먹자마자 프로암 라운딩을 위해 총총히 걸어가면서 사진을 찍으려는 기자에게 “늦으면 벌금 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연히 프로암 18홀 경기를 하는 박성현 선수의 샷을 지켜보고 인터뷰를 한 것은 행운이었다. 단 한 홀의 경기를 봤는데 샷 감각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 홀에서 퍼팅 연습을 좀 더 하는데 샷이 예술적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이번 대회 자신 있느냐고. 올 시즌 부진한 터라 그녀는 “내가 잘하면 된다”고 수줍게 답했다. 그러던 그녀가 우승컵을 차지했다. 

36홀로 줄여서 단축 승부했으니 프로암에서 한번 더 라운딩한 게 연습의 도움이 됐던 것일까. 어쩌면 그다지 원치 않는 ‘한번 더’가 삶의 경기에서 이처럼 선물로 행운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싶었다. 

코펠 시의원 선거는 아쉬웠다. 3명의 후보 중 전영주 후보는 2위를 차지했다. 1위와 단 342표차다. 첫 도전치곤 준수한 성적이기도 했지만, 잘하면 1위도 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더 컸다. 

하지만 과반수 당선자가 없기에 1위 후보와 결선투표를 하게 된 것은 분명 한번 더의 기회다. 표 차이를 재차 확인하는 결전이 될 수도 있지만 기적같은 역전의 기회일 수도 있다. 이런 역전이 없었던 게 아니다. 이전 달라스 시의원 선거에서도 나왔다. 한인에게도 잘 알려진 타 민족 후보가 몇차례 연임하던 의원 자리여서 무난히 재선될 줄 알았다. 그런데 본선에서 1위를 했지만 과반수를 못 넘겨 2위와 결선투표를 했다. 표차가 커서 당연히 승리할 줄 알았는데, 예상을 뒤엎고 2위 후보에게 패하고 말았다. 

물론 한인 후보가 역전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이번에 한인들이 ‘한번 더’ 관심을 모아줄 기회가 주어진 건 맞다. 한인 후보로서 2천표 가까운 미국인표를 얻은 것만으로도 그의 인지도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를 아는 한인들 투표가 저조했는데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주류 유권자 표가 많았다는 것 아닌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텍사스 뉴호프(New Hope)라는 소도시는 임시 시장이던 동성애자 여성이 사상 첫 동성애자 선출직 시장을 노렸지만 패했다. 그녀는 그나마 자신의 동성애 이슈로 더 많은 사람이 투표에 참가한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뉴호프 시 민주주의 발전이 자랑스럽다는 그녀는 “민주주의는 유권자의 관심 때문에 살고, 반대로 유권자의 냉담 때문에 죽는다”고 한마디 남기고 떠났다. 자신을 떨어뜨린 유권자들의 참여였다 해도 그게 바로 민주주의를 살리는 길이기에 그거면 됐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민주주의는 자기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함이 없는 환경을 말한다. 침묵으로 숨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말이다. 반면 독일의 학자 노일레노이만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다수 의견에 속하면 자신 있게 목소리를 내고 소수 의견에 속하면 침묵한다”는 침묵의 나선 효과를 지적했다. 

침묵하는 집단이 있고, 식어있는 냉담함이 보인다면 민주주의는 죽었다. 루소가 여론이라는 말을 처음 쓰면서 “모종의 분위기상 압력 때문에”라고 정의했다는데 침묵하는 이들은 뭔가 모종의 압력에 굴복해 몸을 사리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쓰는 일이 자꾸 벌어지고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이나 글은 인터넷에서 찍혀서 댓글 부대 언어폭력에 시달린다는 한국 때문에 민주주의가 걱정되지만 여기는 다르지 않은가. 

이번에도 ‘한번 더’의 기적과 선물을 기대한다. 도대체 몇번씩 투표하느냐는 불평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투표장을 찾을 그대들을 응원한다. 
<이준열 뉴스코리아 편집국장/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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