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착지법, 꺾인 자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시
DATE 18-01-05 00:44
글쓴이 : 어드민      

출발은 언제나 비장했으나 종말은 항상 허탈이다. 시인 박인걸이 ‘송년’에서 한 말이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생각나는 이 구절은 오히려 위로다. 
일본 작가 우치다테 마키코가 65세 정년퇴직자를 주인공으로 쓴 책의 제목은 ‘끝난 사람’이다. 제목은 부정적이지만 사실상 이들에 대한 위로가 있는 책이다. 작가는 말한다. 친구들을 보면 주목받은 인생일수록 낙차가 크고 경력이 화려할수록 착지가 불안하더라고. 차라리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곳에서 성실하게 일하던 친구들이 더 오래 가는 ‘연착륙’을 했더라고. 젊은 시절 수재 소리 들었던 사람이나 그 반대 사람이나, 또 젊어서 미인 소리 듣던 사람이나 아니나, 일류 기업 다녔거나 못 다녔거나 결국은 종착역에 모두 일렬로 서있더라는 말. 왠지 위안이 된다. 
인생은 늙어갈수록 어디에 어떻게 정확하게 내려 앉는지 그 ‘착지’가 중요하다. 높은 하늘을 날며 누볐다 한들 급격한 낙하로 발목 접히는 착지를 한다면 남은 건 고생길이다. 공자가 나이 50을 지천명이라 하고 군자인 거백옥도 50세가 되자 지난 49년 인생이 잘못된 줄을 알았다 했다. 반생에 이르러 그 때야 하늘이 나를 왜 세상에 보냈는지를 알고, 또 지난 날이 잘못 뿐이었음을 알게 된다니. 아마 먹고사는 일에 골몰하느라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조차 잊고 살았을 것이다. 불안한 착지의 시작이다. 
미국 한 호스피스 설립자가 숱한 임종을 보고 내린 결론. 많은 사람이 괴로움, 죄책감, 두려움 속에 죽어간다. 모두 삶의 끝에 가서야 깨닫고 후회한다. 죽는 순간에야 1분 1초의 귀중함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로 14번째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신과 함께’를 보고난 뒤 울었다는 사람들이 그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사후 세계에 대한 판타지 영화라 어떨까 싶었는데 인기 있는 걸 보니 공감대가 있는 모양이다. 주인공이 사후 심판자 앞에서 “어머니를 한 번만 만나게 해주세요. 잘못했다고 말씀드려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울지 않을 수 없었다는 후기를 본다. 아차 싶다. 깨달음은 왜 늦게, 땅에 발이 닿고서야, 죽고 나서야 오는 것일까.  
제갈공명이 어린 아들에게 미리 훈계를 한 이유였으리라. “자신을 끊임없이 비우고 헹궈내는 맑고 담백함과 내면으로 침잠하는 고요한 정화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제 뜻이 환해지면 그제야 먼 곳까지 갈 힘이 생긴다”라고. 내면을 단련하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먼저 깨달으라는 말, 그렇지 않고 달린다면 종국에 그 착지는 허망할 것이라는 충고다. 
한국의 한 시인은 중년을 맞아 ‘꺾이는 나이가 됐다’고 말한다. 그 전에 꺾지 않고 살았음에 대한 회환이리라. 그래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은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시인들이 있다. 오죽하면 류시화가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고 했을까. 그는 결국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고 못박는다. 
“희망은 어찌하여 광기인가”라고 말한 황지우도 비슷했다. ‘비 그친 새벽 산에서’ 그는 “산을 내려오면/ 산은 하늘에 두고 온 섬이었다/ 날기 위해 절벽으로 달려가는 새처럼/ 내 희망의 한 가운데에는 텅 비어 있었다”고 희망을 자조한다.
희망조차 비우는 것이 날기 위해선 절대 필요한 일이라는 뜻일까. 희망도, 절망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바라볼 용기가 있는 자에게만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석한 이의 말처럼. 
언제 착륙해야 하는지 우리 모두 인생의 운명은 알 길이 없다. 단테는 ‘신곡’ 지옥편에서 “운명은 풀 속의 뱀처럼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앞날, 그리고 그 착지. 결국 삶을,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게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정호승의 시가 답한다. “오늘도 삶을 생각하기보다/ 죽음을 먼저 생각하게 될까봐 두려워라/ 세상이 나를 버릴 때마다/ 세상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나는/ 아침햇살에 내 인생이 따뜻해질 때까지/ 잠시 나그네새의 집에서 잠들기로 했다.” 맞다. 나그네처럼 가볍게 살아야 내려앉을 때도 가뿐할 것 아닌가.  
박노해의 시도 문득 용기를 준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은 없으니/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니. 
나를 포함해 새해를 맞는 ‘꺾인 자들’에게 바친다.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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