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또마열, 우습게 끝나는 인생에 대한 경종
DATE 17-09-22 00:39
글쓴이 : 어드민      

그녀를 처음 TV로 봤을 때 두번 놀랐다. 당시 미국 연방 대법관으로 취임하는 자리에서 나타난 그녀의 외모 때문에 놀랐다. 분명히 히스패닉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취임 일성에서 보이는 그 자신감과 언변에 놀랐다. 2009년 히스패닉 최초이자 여성으로는 세번째로 미국 대법관으로 취임했던 소니아 소토마요르. 
갓 입학한 대학의 선배라며 같이 취임식을 보던 딸은 눈물까지 흘리며 감격해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그 자리에 선 것 마냥. 나는 기회다 싶어 딸에게 말했다. 너도 저런 인물, 무엇의 최초가 돼야 하지 않겠냐고. 딸은 울다 말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빠 발음은 틀렸어, 샷또마열이 맞아” 핀잔까지 하면서.  
소토마요르의 자서전이 한국에 번역돼 출간되면서 새삼 그녀의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희망의 자서전이라고 부를만큼 그녀는 인간승리를 보여준다. 7세에 소아당뇨 진단을 받아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고 산다는 그녀, 알콜중독자였던 아버지, 그리고 근근히 가정을 이끌어가던 어머니, 그녀의 조건은 불리한 것 투성이었다. 소수계 여성, 불치병, 뉴욕 빈민가 등. 
옛날의 ‘개천에서 용나는 일’이 이제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시대다. 할아버지가 재력가여야 하고, 엄마는 온갖 학원과 괴외활동을 꿰찬 정보녀야 하고, 대신 아버지는 무관심해줘야 ‘인서울’ 대학에라도 갈 수 있게된 한국의 현실, 그건 더 이상 개천일 수 없다. 
그들에게 소토마요르가 메시지를 던진다. 개천의 용은 아직 가능하다고. 좋은 집, 빠른 차, 수백만명 환호자에 둘러싸이는 신분 상승은 몰라도 자신이 성장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는 꿈은 지금도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단 “나보다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전제에서다. 
한국은 대법원장 임명이 마침내 국회 동의를 얻어 가결됐다. 공석인 사법부 수장의 자리가 드디어 채워진 건 환영할만한데 좌파 대법원장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우려들도 나온다. 사실, 좌파건 우파건 인간성과 업무적 역량이 확실하다면 무슨 걱정을 하겠는가. 다만 개인적으로 그간 수많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법조인들이 보여준 실망감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그 역시 같은 배경이란 것이 눈에 들어올 뿐. 
최근 한국은 전전 대통령들에 대한 적폐 청산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잘못과 비리는 지금이라도 잡아내 처단해야 하겠지만, 기우도 없지 않다. 뭔가 반복되는 현상인 것 같아서다. 또 5년 뒤에도 같은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 있을까. 
이런 예는 다른 나라에서도 없지 않다. 유명한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을 영국의 승리로 이끌었으나 전후 치러진 선거에서 수상 자리를 내줬다. 그래서 인류공동체는 필요에 따라 최고 권력자들도 ‘희생양’으로 요구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권력을 고양이와 쥐의 관계에 비유했던 엘리아스 카네티는 ‘군중과 권력’에서 “살아남는 최후의 인간이 되는 것이 모든 권력자가 원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인간은 다른 것들보다 오래 살아남기 위해 그것들을 죽이기를 원하고, 다른 것들이 자기보다 오래 살아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살아 있으려 한다는 것.
끝이 중요하다는 말일 수도 있다. ‘사람’에 대해 시인 이생진이 한 말이 따끔하다. 어떤 사람은 인형으로 끝난다/ 어떤 사람은 목마로 끝나고/ 어떤 사람은 생식으로 끝난다/ 어떤 사람은 무정란으로 끝나고/ 어떤 사람은 참 우습게 끝난다.   
자신만의 뚜렷한 인생관을 갖고 살아야 할 것이지만, 또 그렇게 살았다해도 내 후세나 후임이 나를 어떻게 할지는 운명에 맡겨야 한다. 그게 인류의 역사다. 19세기 미국 상업주의에서 벗어나 통나무집을 짓고 세속과 벗어난 삶을 실험해봤던 소로우는 말한다. “나는 일부러 그렇게 살고 싶었다. 내가 죽을 때 내가 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까 두려워서.”
그는 틀에 박힌 법을 거부했다. 만약 어떤 법률이 다른 사람에 대한 정의를 파괴하기 위해 당신을 이용하는 그런 성격이라면 그 법을 거부해도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와 보폭이 달랐다. “어떤 사람이 동행자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면 그는 아마 다른 북소리에 맞춰 걷고 있을 것이다”라면서.
두려운 건 “다들 그러니까”라는 흐름에 편승해 자신만의 삶을 살지도, 끝내지도 못하는 경우다. 그건 참 우습게 끝나는 무정란 인생이다. 불편과 불리함을 온 몸에 지니고서도 자기 삶을 살아내는 ‘샷또마열’이 또 존경스럽다. 내 딸이 아니어도 그렇다. 하긴 나도 내 딸에게 전혀 그런 인물이 아니지 않던가.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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