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의 먹힘, 이국 땅의 디아스포라를 울리다
DATE 17-08-25 00:55
글쓴이 : 어드민      

99년만의 개기일식이라 미국이 술렁거렸지만 막상 햇빛에 눈 버릴까봐 제대로 응시도 못하고 보냈다. 주변이 평소와 다르게 어둑해지는 느낌으로 실감했을 뿐. 달이 해를 가리는 일식, 그리고 달이 지구에 가려지는 월식은 뚜렷한 이유없이 신비하다. 
사실 월식은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현상이란다. 강연호 시인이 ‘월식’에서 이를 감성적으로 그렸다. 오랜 세월 헤매 다녔지요/ 세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그대 찾아/ 부르튼 생애가 그믐인 듯 저물었지요/ 누가 그대 가려 놓았는지 야속해서/ 허구한 날 투정만 늘었답니다/ 상처는 늘 혼자 처매어야 했기에/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흐느낌/ 어찌 짐작이나 했겠어요/ 그대 가린 건 바로 내 그림자였다니요/ 그대 언제나 내 뒤에서 울고 있었다니요. 
뭔가가 가려지는 일식, 월식 현상에도 시인처럼 가슴이 먹먹해진 이유는 이민자로서 이국 땅에서 점차 빛을 잃어가는 생에 서있어서일까. 점점 가려지고 어두어지다 저 해와 달처럼 삶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면 누가 기억이라도 해줄건가. 
재외동포를 ‘흩어진 민족’으로 지칭하는 디아스포라가 ‘눈물’의 단어인 게 실감난다. 디아스포라를 ‘국외로 추방된 소수 집단공동체’라 정의한 학자가 있다. 원래 유대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의 분산을 가리켰지만 지금은 이주민, 국외 추방 난민, 망명자, 소수민족 공동체로 의미가 확대돼 사용된다고 해석한 퇴뢰리안도 ‘약자의 눈물’을 그 상징으로 꼽았다. 
바벨론에 끌려간 나라 잃은 유대인들의 통곡, 병자호란 이후 60만 조선 백성이 청나라에 끌려가면서 흘린 눈물, 임진왜란과 일제시대 위안부로, 징용으로, 도공으로 끌려간 우리 선조의 피눈물도 디아스포라의 역사다. 고향을 그리는 이방인 집단의 우울이 디아스포라 역사에 강물처럼 도도히 흐른다. 
느낌 강한 단어 ‘민족’을 ‘우울’로 풀어간 한 문화평론가의 말도 맥락이 같다. 국가와 인종의 결합어인 민족은 한민족에게 눈물과 연결돼 사용돼 왔다. 분단의 한반도에서 ‘민족’을 앞세운 이데올로기의 파워는 강력했다.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는 우울의 상징적 ‘메타포’였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한민족의 분단은 항상 ‘이산가족’의 눈물로 설명됐기에. 
달라스 한인동포 디아스포라가 이곳에 총영사관이 있게 해달라고 서명했다. 1만3천명이 넘은 서명지가 한국 정부에 배달되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정치적, 외교적 난맥상이 있는 요구여서 쉽지 않은 줄은 알지만, 따지고 보면 엄청난 요구도 아니다. 지역 한인 동포들의 삶을 조금만 더 편리하게 해달라는 극히 디아스포라적 눈물이다. 그 염원에는 숨겨진 아젠다도 없고, 이념적 욕망도 없다. 이방인으로 이곳 땅에 사는 눈물의 한민족에게 한국 정부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를 민초의 ‘촛불’로 요구한 것뿐.
미국이 자민족 백인우월주의 및 극우주의로 돌아서고 있는가 하면 중국이 중화 민족 부흥의 기치를 내걸고 국제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판국에 이방인인 우리는 더 고립무원이다. 어느날 미국에 이민와 사는 것이 사대주의나 자기 보신주의로만 비쳐질까 두려운 현실을 어찌 모르랴. 하지만 우리들에게 물어보라. 디아스포라의 눈물을 선택한 이유가 뭔지.
중국학을 공부한 나도 중국에 가려고 했다. 아니 미국에 왔다가 중국으로 가려고 했다. 그 와중에 디아스포라로 남고 말았다. 그리고 중국은 나같은 이들의 애정에서 멀어져갔다. 중국 국내적으로 국가주의 팽창은 전체주의 통제사회로 회귀했다. 당에 대한 도전이 금기시된다. 류사오보와 같은 지식인들은 갇혀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경제적 호황으로 우월감에 충만한 ‘새로운 중국’은 미국적 질서 대신 중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만드는 데 혈안이 돼있다. 군사력으로 이웃을 협박하고 외국 기업을 골탕먹이며 근육을 자랑하는 대국주의 오만함은 내가 가고 싶던 그 중국의 모습은 아니다. 
이민자로서 왜 여기 왔는지, 왜 이러고 있는지 잊을 때가 있다. 바빠서다. 아니 시인 허연의 말이 더 맞다. “세월이 흐르는 걸 잊을 때가 있다. 사는 게 별반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 같은 삶의 유리 조각들이 너무나 처연하게 늘 한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이국 땅에서 가려진 채 사라져가는 삶을 선택한 하찮은 우리들이면서도 그 ‘먹히기만 하는’ 삶이 이제는 아픈게다. 그림자가 감춘 해와 달일뿐 살아서 제 빛을 내고 있음을 알려보겠다는 아우성이다.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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