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잘못?” 그 양비론이 간과한 기억의 무기
DATE 17-08-18 00:29
글쓴이 : 어드민      

결국 중심을 잡는다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는 게 드러났다. 중용과 중립에 서서 좌우에 흔들리지 않는 건, 차라리 한쪽을 편드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말이다. 이는 맹자에서 이미 엿보였다. “중간을 붙들어 취하는 것이 바른 길에 가까운 것이긴 하지만, 중간만을 붙들고 저울질함이 없으면 오히려 한 가지만 고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 
이는 양비론(兩非論)의 비판에도 적용된다. 서로 충돌하는 두 의견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말하는 양비론은 정치적 입장 피력에 종종 사용된다. 때론 중도적 입장으로 양측을 모두 존중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과실이 더 큰 쪽을 유리하게 만들어 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작가 홍세화는 ‘쎄느 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라는 책에서 양비론에 대해 양쪽을 모두 비판하면서 사실은 양쪽으로 자기보신하는 기회주의적 속성으로 치부했다. 
중용이란 양 극단 사이에서 무조건 가운데를 잡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양 극단의 뜻을 잘 헤아려 옳고 그름을 살핀 연후에 가능한 일이다. 고로 요즘 같은 시대에 중용을 취한다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일 터.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양비론을 견지했다가 뭇매를 맞고 있다. 버지니아 주에서 발생한 백인우월주의 집회의 유혈 사태에 대해 그는 “둘 다 책임이 있다”는 양비론을 내세웠다. 극우 인종주의자들을 크게 비난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들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노예제를 찬성하던 남부연합군 상징 동상이나 깃발들을 철거하는 인권 자유주의자들의 행태가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력 사태를 촉발했다는 트럼프 입장에 대해 미국이 새로운 형태의 남북전쟁으로 향하고 있다는 언론의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격 참모가 바로 대안 우파(Alt-right)를 키운 장본인이다. 그는 트럼프에게 극우 활동가들을 지나치게 비난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트럼프도 역설로 국민을 설득하려 했다. 미 건국의 주인공들인 조지 워싱턴이나 토마스 제퍼슨도 노예를 소유했었는데, 그들의 동상도 철거해야 하느냐고. 
이는 철학자 김진석이 ‘폭력과 싸우고 근본주의와도 싸우기’라는 저서에서 지적한 바를 역이용하는 논리다. 즉, 도덕적 근본주의는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폭력을 반대하기에 과격파들과는 다를 것처럼 말하지만, 그 근본주의, 즉 평화주의마저도 그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한다는.  
트럼프도 그 말을 한 것이다. 남의 동상을 훼손하는 건 폭력 아니냐고. 물론 트럼프 대통령으로는 대선 당시 자신을 적극 후원하던 백인우월주의 극우파들을 이제 나몰라라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걸 양비론으로 포장하려던 것이다. 
유사한 태도를 일본의 아베 총리가 보여줬다. 한국은 광복절을 지내며 일본에 대한 감정을 삭이고 있는데, 일본 정부는 혹 한국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한국 주재 일본인들을 한국 피난소에 먼저 수용해주길 요구하고 있었다. 이를 확답받기 위해 일본 당국자들이 수차례 서울을 방문하도록 했다. 
각종 비리 의혹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은 아베가 북한발 한반도 위기를 부각시키고, 또 자국민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이미지로 지지율 반등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과거보다 현재의 자신의 정치적 지지율만이 무조건 옳은 일이었던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유태인이 피로 쓴 글이 있었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된다”는. 역사를 기억해보면 시시비비가 명백해지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양비론으로 덮을 일이 아니다. 일제 때처럼, 노예들처럼 억압받는 자들이 있었다면 해방이 옳은 것이다. 압제 당한 자들이라면 독립과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게 맞다. 
‘희망의 교육학’에서 파울로 프레이리가 말했다. 피억압자의 해방은 우연히 얻어지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이 해방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함으로써 쟁취하는 것이라고. 억압을 낳는 원인을 비판적으로 의식해야 비로소 스스로를 해방할 수 있고, 그런 비판적 인식을 하도록 돕는 게 교육의 몫이라고. 
폭력이 아니다. 교육이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건. 그리고 그 교육은 기억에서 시작된다. 루이 아라공의 “죽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닐 터, 타인들이 있기 때문이다”는 말도 기억을 교육받은 후손에 대한 희망가였으리라. 어설픈 양비론에 주저앉은 이들에게 묻는다. 이제 사는 이유가 좀 뚜렷해지고 있는가.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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